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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삽

인물 · 성경 인물

아삽은 다윗 시대의 레위인 음악가로, 성전 찬양을 이끈 노래하는 자들의 지도자였다. 시편 50편과 73~83편이 '아삽의 시'로 전해지며, 그의 자손은 포로 귀환 이후에도 찬양 직무를 이어 갔다.

성경의 기록

아삽은 역대상 6:39에 베레갸의 아들로 나오며, 족보는 레위의 아들 게르손으로 이어진다. 이로 보아 그는 레위인 가운데 게르손 자손이다. 같은 장에서 다윗은 노래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들을 세웠는데, 아삽은 헤만의 오른쪽에서 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역대상 6:31-39).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놋 제금(심벌즈)을 울렸다(역대상 15:16-19). 언약궤를 장막에 안치한 뒤에는 다윗이 아삽을 노래하는 자들의 우두머리로 세웠다. 이어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 감사의 노래를 하게 하고, 언약궤 앞에서 늘 섬기게 하였다(역대상 16:5-7, 16:37). 역대상 25:1-2는 아삽의 아들들이 왕의 명령에 따라 '신령한 노래'를 맡았다고 적는다. 여기서 '신령한 노래를 하다'로 옮긴 히브리어는 원래 '예언하다'라는 뜻이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할 때도 아삽 계열의 노래하는 자들이 찬양하였다(역대하 5:12). 훗날 히스기야는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찬송하게 하였다(역대하 29:30). 아삽 자손은 요시야 때의 유월절(역대하 35:15)과 포로 귀환 이후 성전 재건 때(에스라 2:41, 3:10)에도 찬양 직무를 맡았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시편 50편과 73~83편, 모두 열두 편의 표제에 '아삽의 시'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느헤미야 12:46은 "다윗과 아삽의 때"를 성전 찬양의 본보기가 된 시대로 회고한다. 역대기는 아삽을 '선견자'라 부르며 음악과 예언을 가까이 연결해 그린다.

신약은 아삽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는다. 다만 마태복음 13:35는 예수의 비유 사용을 설명하면서 아삽의 시인 시편 78:2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고 인용한다.

해석과 논점

  • '아삽의 시'의 저자: 표제의 '아삽의'라는 표현은 '아삽이 지은', '아삽에게 준', '아삽 계열(찬양대)의' 등으로 읽힐 수 있다. 시편 74편과 79편은 성전 파괴를 묘사한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이 시들을 바벨론 포로 무렵 아삽 자손이 지은 것으로 본다. 전통적인 읽기에서는 아삽 본인의 작품으로 보거나 예언적 성격의 시로 설명하기도 한다.
  • 에단과 여두둔: 다윗 시대 음악 지도자로 함께 나오는 에단과 여두둔을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본문이 이를 명시하지는 않는다.
  •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 히스기야의 신하 요아의 아버지 아삽(열왕기하 18:18)과 왕의 삼림 감독 아삽(느헤미야 2:8)은 대체로 다른 사람으로 본다. 마태복음 1:7-8의 왕 '아사'가 일부 사본에는 '아삽'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유다 왕 아사를 가리킨다.
  • 예언과 찬양: 역대상 25:1의 '신령한 노래'는 은사주의 진영 일부에서 찬양 속 예언적 사역의 근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다른 쪽에서는 이를 성전 찬양 직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좁게 읽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아삽은 찬양대와 찬양팀 등 예배 음악 봉사자의 본보기로 자주 소개된다. 일부 교회는 찬양대 이름에 아삽을 붙이기도 한다. 아삽의 시 가운데 시편 73편은 악인의 형통을 보며 겪은 갈등과 회복을 다룬 본문으로 설교에서 자주 쓰인다. 특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28)와 시편 73편 25-26절이 많이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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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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