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치유
성경 · 기적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치유는 예수가 데가볼리 지방에서 듣지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에바다"라는 말로 고친 기적이다. 마가복음 7장 31-37절에만 나온다.
성경 본문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 7장 31-37절에만 나오며, 다른 복음서에는 같은 이야기가 없다. 예수는 두로 지방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가볼리 지방을 지나 갈릴리 호수로 온다.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데려와 안수해 주기를 청한다. 예수는 그를 무리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간다. 그리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댄 다음,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에바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해졌다.
예수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 널리 퍼뜨렸다. 사람들은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마가복음 7:37)며 놀랐다.
배경
데가볼리는 '열 도시'라는 뜻이다. 갈릴리 호수 동쪽과 남동쪽에 있던, 헬라 문화의 영향이 강한 도시들이 모인 지역을 가리킨다. 바로 앞에는 수로보니게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이 기적도 이방 지역에서 이어진 사역의 하나로 읽힌다. 다만 고침을 받은 사람이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는다.
"에바다"는 아람어이며, 마가는 이를 "열리라"로 풀어 적었다. "말 더듬는"으로 옮긴 헬라어 낱말(모길랄로스)은 '말을 어렵게 하는'이라는 뜻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본문에만 나온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이 헬라어 낱말은 칠십인역(구약의 헬라어 번역) 이사야 35장 6절에도 쓰였다. 이 구절은 이사야 35장 5-6절의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고 말 못하는 자의 혀가 노래하리라"는 회복의 예언에 속한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는 마가가 이 기적을 그 예언의 성취로 보여 준다고 이해한다.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보낸 대답에도 "못 듣는 자가 들으며"라는 말이 들어 있다(누가복음 7장 22절).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 8장의 벳새다 맹인 치유와 짜임이 비슷하다. 두 이야기 모두 환자를 따로 데리고 가고, 침과 손을 쓴다. 그 사이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마가복음 8:18)고 꾸짖는다. 이 때문에 두 기적을 제자들의 닫힌 귀와 눈이 열리는 과정을 보여 주는 표징으로 함께 읽는 해석도 있다.
해석과 논점
- 침과 손짓: 예수가 손가락을 귀에 넣고 혀를 만진 까닭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린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알아볼 수 있도록 몸짓으로 뜻을 전한 배려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당시 침을 치료에 쓰던 관습과 연결하는 견해도 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 탄식: 예수의 탄식은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읽히기도 하고, 기도의 표현으로 읽히기도 한다.
- 침묵 명령: 예수가 왜 알리지 말라고 했는지는 마가복음 전체에 나타나는 이른바 '메시아 비밀' 주제와 함께 논의된다.
- 오늘의 치유: 신유(병 고침)의 은사가 오늘도 이어진다고 보는 오순절·은사주의 교회는 이 본문을 현재의 치유를 기대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한다. 반면 기적의 은사가 사도 시대로 그쳤다고 보는 쪽은 이 본문을 예수의 정체를 드러내는 표적으로 읽는 데 무게를 둔다(은사 중지론과 지속론 참고).
- 예식 전통: 천주교의 세례 예식에는 이 본문에서 이름을 딴 '에파타' 예식이 있다. 사제가 귀와 입을 만지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백하도록 기원하는 순서다. 개신교 대부분의 세례 예식에는 이 순서가 없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이 본문의 "에바다"가 청각장애인 사역이나 관련 기관의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설교에서는 육체의 치유와 함께, 말씀에 닫힌 귀와 입이 열리는 영적 회복을 가리키는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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