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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0장 34-35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출애굽기 40:34-35

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자 구름이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해 모세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면이다.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머무신다는 임재의 대표 본문이어서 헌당식과 예배 설교에 자주 인용된다.

문맥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 설계를 지시했고(25~31장), 금송아지 사건(32~34장)을 지나 백성이 예물을 모아 성막을 지었다(35~39장). 40장에서 모세는 출애굽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고 기구를 배치하여 일을 마친다. 바로 그때 구름이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을 채운다. 회막은 '하나님이 백성을 만나시는 장막'이라는 뜻으로, 성막의 다른 이름이다.

이 구절은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서술자가 사건을 전하는 보도다. 이어지는 36~38절은 이 구름이 광야 행진을 이끌었다고 전한다. 이 장면은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지으라는 명령(출애굽기 25:8)이 이루어진 결말에 해당한다.

해석

  • 임재의 이동으로 보는 읽기: 시내 산 위에 머물던 구름과 영광(출애굽기 24:15-18)이 이제 백성 한가운데의 장막으로 옮겨 왔다고 읽는다. 35절의 '덮이다'는 히브리어 '샤칸'(머물다, 거하다)이다. 이 말은 성막을 가리키는 '미쉬칸'과 어근이 같다. 후대 유대교 랍비 문헌은 하나님의 임재를 같은 어근에서 나온 '셰키나'라는 말로 불렀다.
  • 창조 기사와 겹쳐 읽기: 일부 성서학자는 성막 완성 기사의 표현이 창세기 1~2장의 창조 완성 기사와 닮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을 마치는 장면과 축복하는 장면이 그 예다. 이들은 성막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작은 세계로 해석한다.
  •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표로 보는 읽기: 많은 개신교 해석 전통은 성막을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예표, 곧 모형으로 본다. 그래서 '거하시매'를 '장막을 치다'라는 뜻의 헬라어로 쓴 요한복음 1:14와 이 구절을 잇는다. 또 모세조차 들어가지 못한 장면을 히브리서가 말하는 그리스도를 통한 담대한 나아감(히브리서 10:19-20)과 대조해 설교한다.
  • 성령의 임재로 적용하는 읽기: 교회와 신자를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보는 고린도전서 3:16과 연결하는 해석은 교단을 가리지 않고 널리 쓰인다. 오순절주의·은사주의 계열에서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를 구하는 근거로 특히 자주 인용한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 예배당을 '성전'이라 부르는 문제: 한국 교회에는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 부르고 이 구절을 건축과 입당에 적용하는 관행이 있다. 반면 여러 교단의 목회자와 신학자는 신약에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신앙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래서 '예배당'이라는 말이 더 알맞다고 지적한다.
  • 영광과 체험: 하나님의 영광을 예배의 감정적 분위기와 곧바로 같은 것으로 여기는 적용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의 문맥을 벗어난다는 비판이 있다. 반대로 임재의 체험을 강조하는 쪽은 이 본문이 실제적 임재를 말한다고 응답한다.
  • 번역: 그리스어 구약인 칠십인역은 35절의 '덮이다'를 '그늘을 드리우다'라는 뜻의 동사로 옮겼다. 같은 동사가 마리아의 수태를 알리는 누가복음 1:35에도 쓰여, 두 본문을 연결하는 해석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헌당식과 입당예배에서 솔로몬 성전 봉헌 기사(열왕기상 8장)와 함께 설교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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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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