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장 15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마태복음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다니엘서의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을 환난의 징조로 말한 구절이다. 이것이 서기 70년 예루살렘 함락을 가리키는지, 종말의 사건을 가리키는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문맥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리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제자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으며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태복음 24:3)라고 묻는다. 이 구절은 그 물음에 답하는 이른바 감람산 강화(감람산에서 한 긴 가르침, 마태복음 24~25장) 가운데 있다. 앞부분이 전쟁·기근·박해 같은 일반적 징조를 말한다면, 이 구절부터는 구체적 표지를 제시하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16절)라는 피신 명령으로 이어진다. 같은 내용이 마가복음 13:14에도 있고, 누가복음 21:20은 이를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으로 적는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니엘 9:27, 11:31, 12:11의 표현을 가져온 것이다. "가증한 것"은 우상처럼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것을, "멸망"은 성소를 황폐하게 만든다는 뜻을 담는다. 유대 전통에서는 이 표현을 기원전 167년경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4세가 성전을 더럽힌 사건에 적용했다(마카베오상 1:54,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분류).
해석
- 과거 성취로 보는 읽기: 예수의 예언이 서기 70년 로마군의 예루살렘 포위와 성전 파괴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누가복음의 평행 본문과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34절)라는 말을 근거로 든다. 개혁주의 학자 가운데 이 견해를 따르는 이가 많다.
- 미래 성취로 보는 읽기: 세대주의는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재건된 성전에 우상을 세우는 사건으로 읽고, 대환난이 시작되는 표지로 본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4절의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와 함께 읽는다.
- 이중 성취로 보는 읽기: 일차로는 70년 사건을, 궁극적으로는 재림 전의 마지막 환난을 함께 가리킨다고 본다. 성취가 시대를 겹쳐 이루어진다는 예언 이해로, 여러 복음주의 주석가가 이 입장을 취한다.
논쟁과 쟁점
괄호 속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가 누구의 말인지를 두고 견해가 갈린다. 예수가 다니엘서를 읽는 사람에게 한 말로 보는 쪽이 있고, 복음서 기자가 독자에게 덧붙인 말로 보는 쪽도 있다. 번역도 갈린다. 원어 표현은 개역개정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으로, 새번역 등에서는 '황폐'의 뜻을 살린 다른 말로 옮겨져 있다.
이 구절은 종말론 체계에 따라 시점이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성취를 대입하는 해석이 자주 나왔다. 이런 대입에는 문맥을 떠난 인용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한국 교회에서
세대주의 종말론이 널리 퍼진 한국 교회에서는 부흥회와 종말 설교에서 이 구절이 대환난과 적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근거로 자주 쓰였다. 또 신천지는 마태복음 24장을 '배도·멸망·구원'의 순서로 풀고, "멸망의 가증한 것"을 자기 단체 역사 속 특정 사건과 인물로 해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천지는 이것이 계시록의 실상 성취라고 주장한다.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한 주요 교단과 이단 상담 단체들은 이 해석을 비유 풀이를 자의적으로 대입한 대표 사례로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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