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산
성경 · 지명
벧산은 이스르엘 골짜기와 요단 골짜기가 만나는 곳에 있던 가나안의 성읍이다. 블레셋이 사울의 시체를 성벽에 매단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약 시대에는 데가볼리의 한 도시였다.
성경 본문
벧산은 구약의 여러 책에 나온다. 개역개정은 사무엘서에서는 '벧산'으로, 여호수아·사사기·열왕기상·역대상에서는 '벧스안'으로 옮겼다.
- 땅 분배: 여호수아 17:11은 벧스안과 그 마을들을 므낫세 지파의 몫으로 적는다. 17:16에서는 이곳 가나안 사람들에게 철 병거가 있었다고 한다.
- 정복되지 않은 성: 사사기 1:27은 므낫세 지파가 벧스안 주민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 사울의 죽음: 사무엘상 31:8-13에 따르면 블레셋 사람들은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 사울의 갑옷을 아스다롯의 신전에 두고 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 박았다.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이 밤새 걸어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했다.
- 다윗의 이장: 사무엘하 21:12-14는 다윗이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에게서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가져와 베냐민 땅에 묻었다고 전한다. 이 본문은 그 뼈를 "벧산 거리"에서 가져간 것으로 적는다.
- 솔로몬의 행정구역: 열왕기상 4:12에서 벧스안은 솔로몬이 둔 지방 관장 가운데 바아나가 맡은 구역에 속한다.
- 므낫세 자손의 땅: 역대상 7:29도 벧스안을 므낫세 자손의 성읍으로 적는다.
배경
벧산은 이스르엘 골짜기가 요단강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었다. 그래서 동서와 남북을 잇는 길을 지키는 요충지였다. 히브리어 이름은 '벧'(집)으로 시작한다. 뒷부분 '산'의 뜻은 '안식', '고요함' 등으로 풀이되지만 확정되어 있지 않다.
이 성읍과 동일시되는 유적은 텔 벳 셰안(Tel Beit She'an)이다. 이곳에서는 애굽 신왕국 시대의 유물과 파라오의 비문이 발굴되었다. 이를 근거로 이집트가 한때 이곳에 수비대를 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헬라 시대 이후 이 도시는 스키토폴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로마 시대에는 열 개 도시의 연합을 뜻하는 데가볼리에 속했다. 데가볼리 도시들은 대부분 요단강 동쪽에 있었는데, 스키토폴리스는 그 서쪽에 있었던 예외적인 도시로 흔히 소개된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서 벧산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온전히 차지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예로 등장한다. 사무엘서에서는 이스라엘 첫 왕 사울의 비극적 최후가 드러나는 장소이다. 동시에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의 의리가 나타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들은 일찍이 사울이 자신들을 구해 준 일(사무엘상 11장)을 기억하고 그의 시체를 거두었다.
신약성경에는 벧산이나 스키토폴리스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 도시가 속한 데가볼리는 마태복음 4:25, 마가복음 5:20, 7:31에 언급된다.
해석과 논점
사무엘상 31:10은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 박았다고 하고, 사무엘하 21:12는 "벧산 거리"에서 가져갔다고 한다. 두 표현은 흔히 성문 앞 광장에 면한 성벽을 함께 가리키는 말로 이해된다.
예수가 데가볼리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기록 때문에 그가 스키토폴리스에 들렀을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복음서 본문은 이 도시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텔 벳 셰안 유적이 성경의 벧산이라는 동일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개별 지층의 연대와 그것을 어느 성경 사건과 연결할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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