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장 28-30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마가복음 3:28-30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자신을 귀신 들렸다고 한 서기관들에게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경고한 구절이다. '용서받지 못할 죄'가 무엇인지, 신자도 이 죄를 지을 수 있는지를 두고 해석과 신앙적 불안이 자주 논의된다.
문맥
마가복음 3장 20-35절에서 예수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자, 예수의 친족은 그가 미쳤다며 붙들러 나선다(3:21).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 곧 귀신의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낸다고 주장한다(3:22). 예수는 스스로 갈라진 나라와 집은 설 수 없다는 비유와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한다는 비유로 반박한 뒤 이 경고를 덧붙인다.
30절은 이 말이 서기관들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한 데 대한 것이라고 마가가 직접 밝힌다. 친족 이야기 사이에 서기관과의 논쟁을 끼워 넣은 이런 짜임은 흔히 마가복음의 '샌드위치 구조'로 설명된다. 같은 말씀은 마태복음 12장에도 실려 있고, 누가복음은 이를 다른 맥락에 배치한다(누가복음 12장 10절).
해석
- 문맥 중심의 읽기: 많은 주석가는 30절을 근거로 본다. 이 죄는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난 예수의 일을 보고도 사탄의 일이라고 규정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순간적인 말실수보다 하나님의 일을 알아보면서도 고의로 뒤집는 완고한 거부에 무게를 둔다.
- 개혁교회 전통의 읽기: 장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 죄를 진리를 알면서도 악의로 거역하는 것으로 설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개혁주의 쪽은 대체로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 죄에 이르지 않는다고 보며, 이를 성도의 견인 교리와 연결한다.
-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의 읽기: 신자도 믿음에서 떠날 수 있다고 보는 웨슬리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쪽에서는 이 구절을 히브리서 10장 26-31절 같은 경고와 함께 읽는다. 마음이 굳어지는 위험을 진지하게 경고하는 말씀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다만 이 전통에서도 회개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는 사람은 이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목회적 설명이 일반적이다.
- 천주교의 읽기: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하나님의 자비에는 한계가 없다고 설명한다. 다만 회개를 통해 그 자비를 받아들이기를 고의로 거부하는 사람은 스스로 용서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보며, 이를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완고함과 연결한다.
논쟁과 쟁점
- 사본과 번역: 29절 끝의 "영원한 죄"는 일부 후대 사본에 "영원한 심판"으로 되어 있다. 영어 킹제임스역의 "eternal damnation"은 이 읽기를 따른 것이다. 한글 번역에서 '훼방'(개역한글)은 개역개정에서 '모독'으로 바뀌었다.
- 오늘날에도 해당하는가: 일부에서는 이 죄가 예수가 땅에서 직접 사역하던 때의 특수한 상황에 한정된다고 본다. 다른 쪽은 성령의 증언을 고의로 거부하는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고 본다.
- 은사 논쟁에서의 인용: 방언이나 신유 같은 은사 현상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성령 훼방"이라고 경고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예수의 사역을 사탄의 일로 돌린 원래 문맥을 떠난 적용이라는 비판이 있다. 반면 은사 지속론 쪽은 이 구절을 성령의 일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경고로 읽기도 한다(은사 중지론과 지속론).
한국 교회에서
교회 안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것 같다"는 불안을 호소하는 교인이 적지 않다. 이런 교인을 상담할 때 여러 교단의 목회자는 흔히 이렇게 설명한다. 그런 죄를 염려하는 마음 자체가 아직 마음이 굳어지지 않았다는 표시라는 것이다(기독교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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