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성경 · 개념·용어
자비는 남의 고통을 불쌍히 여겨 너그럽게 대하고 돕는 마음과 행동이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고백하고, 신자에게도 같은 마음을 요구한다.
성경에 나오는 곳
구약에서 자비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말씀에 나온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밝히신다(출애굽기 34장 6절). 이 고백은 구약 곳곳에서 되풀이된다. 요엘 2장 12-14절은 이 고백을 근거로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부른다. 요나 4장 2절에서 요나는 같은 고백을 들어, 하나님이 니느웨를 용서하신 데 불만을 터뜨린다.
신약에서는 예수가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누가복음 6:36)고 가르친다(누가복음 6장 35-37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자비를 베푼 자"라는 대답으로 끝난다(누가복음 10:37). 바울은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라고 부른다(고린도후서 1:3).
원어와 번역
개역개정의 '자비'는 여러 원어를 옮긴 말이다. 구약의 '자비로운'은 주로 히브리어 '라훔'을 옮겼다. 이 낱말은 '태(자궁)'를 뜻하는 낱말과 어근이 같다고 설명되며, 어머니가 자식을 아끼는 것과 같은 깊은 연민을 나타낸다고 풀이된다.
같은 어근의 말이 다른 곳에서는 '긍휼'로 옮겨지기도 해서, 우리말 번역에서 두 낱말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헤세드는 보통 '인자'나 '인애'로 옮겨 따로 구분한다.
신약에서는 누가복음 6:36과 고린도후서 1:3의 '자비'가 '오이크티르모스' 계열의 낱말이다. 반면 성령의 열매의 '자비'(갈라디아서 5:22)는 '크레스토테스'를 옮긴 것으로, '친절함·선대함'에 가까운 뜻이다. 이 낱말은 로마서 2:4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옮겨졌다(로마서 2장 4절).
한자어 '자비(慈悲)'는 불교에서도 널리 쓰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 번역어로서의 뜻과 일상어의 어감이 겹치기도 한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구약에서 자비는 언약 백성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근거로 나타난다. 신약은 이 자비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속죄로 드러났다고 본다. 동시에 받은 자비를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요구한다. 예수가 호세아 6:6을 인용해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말씀한 것도 같은 흐름에 놓인다(마태복음 9장 13절).
해석과 논점
- 자비와 공의: 하나님의 자비가 죄에 대한 심판과 어떻게 함께 서는지가 오래된 신학 주제다. 개혁주의는 그리스도가 형벌을 대신 짊어짐으로 공의가 충족되고, 그 위에서 자비가 베풀어진다고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웨슬리 신학은 모든 사람에게 먼저 주어지는 선행 은총을 강조해, 자비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점을 앞세운다.
- 자비와 은혜의 구분: 한국 설교에서는 "은혜는 받을 자격 없는 것을 받는 것, 자비(긍휼)는 받아야 할 벌을 면하는 것"이라는 구분이 자주 쓰인다. 이는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정리이며, 성경 원어의 용례가 언제나 이렇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 자비의 실천: 천주교는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 등을 '자비의 활동'으로 정리해 가르친다. 개신교는 이를 주로 구제와 이웃 사랑의 차원에서 다룬다.
한국 교회에서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는 주일학교와 성경 암송에서 자주 외우는 본문이어서, '자비'라는 낱말이 이 목록으로 익숙하게 알려져 있다. 대한성공회와 기독교한국루터회 등의 예전에서는 '키리에 엘레이손'을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로 옮겨 부르거나 기도하기도 한다.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