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아하스 (유다 왕)
인물 · 성경 인물
여호아하스는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뒤 왕위에 올라 석 달 동안 다스렸다. 애굽 왕 바로 느고에게 폐위되어 애굽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죽었다. 예레미야서에는 살룸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성경의 기록
여호아하스는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이다. 요시야는 므깃도에서 애굽 왕 바로 느고와 맞서다 죽었고, 그 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다(열왕기하 23:29-30). 본문은 "국민"(개역개정 "그 땅 백성")이 그를 데려다가 기름을 붓고 왕으로 세웠다고 적는다. 즉위할 때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고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어머니는 립나 사람 예레미야의 딸 하무달이다(열왕기하 23:31). 성경은 그가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평가한다(열왕기하 23:32).
바로 느고는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다스리지 못하게 했다. 또 유다에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조공으로 물렸다. 이어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다.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었다(열왕기하 23:33-34). 같은 사건이 역대하 36:1-4에도 짧게 기록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그를 살룸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가 끌려간 곳에서 죽고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 예레미야 22:10-12에 실려 있다. 역대상 3:15도 요시야의 넷째 아들로 살룸을 든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여호아하스의 폐위는 요시야의 개혁이 끝난 뒤 유다가 급속히 몰락해 가는 과정의 첫 장면이다. 이 일로 유다는 애굽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이후 왕위는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로 이어지고, 결국 바벨론 포로에 이른다. 예레미야 22:10은 죽은 요시야보다 끌려가 돌아오지 못할 그를 위해 슬피 울라고 말한다.
신약에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요시야 다음에 여고냐(여호야긴)와 그 형제들을 적고 있다.
해석과 논점
- 이름: 여호아하스는 "여호와께서 붙드셨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살룸과 여호아하스 가운데 하나는 본명이고 다른 하나는 즉위할 때 받은 이름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다만 성경은 두 이름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 형을 제치고 즉위함: 여호야김은 즉위할 때 스물다섯 살이었으므로(열왕기하 23:36) 여호아하스보다 나이가 많다. 따라서 여호아하스는 형을 제치고 왕이 된 셈이다. 학자들 가운데는 백성이 요시야처럼 애굽에 맞서는 노선을 이어 갈 인물로 그를 골랐다고 추측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역대상 3:15의 형제 순서가 나이 순서와 맞지 않는 점도 논의되어 왔다.
- 에스겔 19장: 에스겔 19:1-4에는 갈고리에 꿰여 애굽으로 끌려간 젊은 사자가 나온다. 이 사자를 여호아하스로 보는 해석이 많다. 상징으로 쓰인 본문이므로 다른 해석도 있다.
- 동명이인: 예후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열왕기하 13장)와는 다른 인물이다. 역대하 21:17에서는 유다 왕 아하시야도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 연대: 그의 재위를 기원전 609년경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다만 세부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국 교회에서
재위 기간이 짧고 기록이 적어서 그를 주제로 한 설교나 찬양은 드물다. 그는 주로 성경통독이나 성경공부에서 유다 말기 왕들을 차례로 살필 때 이름이 거론된다. 요시야 이후 유다의 몰락을 다루는 설교에서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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