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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2세

인물 · 성경 인물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 예후 왕조의 네 번째 왕이며 요아스의 아들이다. 잃었던 영토를 크게 되찾아 번영을 누렸으나, 같은 시대의 선지자 아모스와 호세아는 그 번영 속의 불의와 거짓 예배를 비판했다.

성경의 기록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여호아스)의 아들이고, 예후 왕조의 네 번째 왕이다. 성경은 그를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라고만 부른다. '2세'라는 이름은 왕국 분열 때의 여로보암과 구별하려고 후대에 붙인 것이다.

열왕기하 14:23-29에 따르면 그는 유다 왕 아마샤 제15년에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41년 동안 다스렸다. 성경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평가한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시작한 죄, 곧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 숭배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선지자 요나가 전한 말씀대로 이스라엘 국경을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했고, 다메섹과 하맛도 되찾았다(열왕기하 14:25, 28). 그가 죽은 뒤 아들 스가랴가 왕위를 이었으나 여섯 달 만에 살룸에게 살해되었다(열왕기하 15:8-10).

이 밖에 역대상 5:17은 그의 시대에 족보가 기록되었다고 적는다. 호세아 1:1과 아모스 1:1은 유다 왕 웃시야와 함께 그의 이름을 들어 선지자들이 활동한 때를 밝힌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열왕기하는 이 시기의 번영을 왕의 공로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로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한 것을 보시고, 이스라엘의 이름을 없애지 않으시려고 여로보암의 손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이다(열왕기하 14:26-27). 또 열왕기하 15:12는 예후의 자손이 4대까지 왕위에 있으리라는 말씀(열왕기하 10:30)이 그의 아들 스가랴 때에 이루어졌다고 밝힌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아모스와 호세아는 이 번영 뒤에 숨은 사치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억압, 형식만 남은 예배를 강하게 꾸짖었다(아모스 2:6-7, 6:4-6). 그래서 그의 치세는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전성기이면서 북이스라엘 멸망을 앞둔 시기로 읽힌다. 역사학자들은 앗수르가 아람의 힘을 약하게 만든 당시 국제 정세가 영토 확장의 배경이 되었다고 본다.

신약성경은 여로보암 2세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시대에 예언한 요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등장한다(마태복음 12장 41절).

해석과 논점

  • 열왕기하 14:25는 요나가 이 시대에 실제로 활동한 선지자였음을 보여 주는 구절로 자주 인용된다. 요나서를 역사 기록으로 읽는 쪽은 이 구절을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 반면 요나서를 후대에 쓰인 교훈적 이야기로 보는 학자들은 열왕기에 나오는 요나와 요나서가 쓰인 시기를 나누어 본다.
  •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집"을 칼로 치시리라고 예언했다(아모스 7:9). 그런데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왕에게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라고 보고했다(아모스 7:10-11). 실제로 여로보암 자신은 평안히 죽었고, 칼에 죽은 사람은 아들 스가랴였다. 많은 주석은 아마샤가 아모스의 말을 바꾸어 전했으며, 예언은 그의 왕조가 끝나는 데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 41년이라는 재위 기간에는 아버지와 함께 다스린 공동 통치 기간이 들어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재위 연대도 학자에 따라 몇 년씩 차이가 난다.

한국 교회에서

여로보암 2세가 설교나 교회학교 공과의 중심인물로 다뤄지는 일은 드물다. 주로 아모스서·호세아서·요나서를 설교하거나 공부할 때 시대 배경으로 소개된다. 이때 경제적 번영이 곧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표시는 아니라는 점, 그리고 번영 속에서 정의와 바른 예배를 잃은 사회에 대한 경고를 설명하는 예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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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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