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이스라엘 왕)
인물 · 성경 인물
스가랴는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여로보암 2세의 아들이다. 여섯 달 동안 다스리다가 살룸에게 살해되었고, 그의 죽음으로 예후 왕조가 끝났다.
성경의 기록
스가랴는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아들이다. 열왕기하 14:29는 여로보암이 죽은 뒤 스가랴가 왕위를 이었다고 적는다. 열왕기하 15:8-12에 따르면 그는 유다 왕 아사랴(웃시야) 제38년에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었고, 여섯 달 동안 다스렸다.
성경은 그가 조상들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평가한다. 또 여로보암(느밧의 아들)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 숭배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반역하여 그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그러나 살룸도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죽임을 당했다(열왕기하 15:13-14).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열왕기하 15:12는 스가랴의 죽음을 예후에게 주신 말씀의 성취로 설명한다. 그 말씀은 예후의 자손이 4대까지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는 것이었다(열왕기하 10:30).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다음에 스가랴가 4대째 왕이었으므로, 그의 죽음으로 예후 왕조가 끝났다.
스가랴의 죽음 뒤로 북이스라엘에서는 반역과 왕의 교체가 잇따랐다. 이 혼란은 결국 북이스라엘 멸망으로 이어졌다. 같은 시대의 선지서인 아모스는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아모스 7:9)고 예언하였다. 이 구절은 흔히 스가랴의 죽음과 함께 읽힌다. 신약성경은 이 왕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석과 논점
- 예후 왕조에 대한 평가: 열왕기하 10:30은 예후가 아합의 집을 친 일을 칭찬한다. 반면 호세아 1:4는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겠다고 말한다. 해석자들은 이 두 본문의 관계를 서로 다르게 설명한다. 예후의 행위 자체는 명령에 따른 것이지만 그 동기와 과도함이 심판받았다고 보는 견해가 있고, 후손들이 이어 간 우상숭배가 심판의 원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 살해 장소: 개역개정은 열왕기하 15:10을 살룸이 그를 "백성 앞에서" 쳤다고 옮긴다. 일부 칠십인역(구약의 고대 그리스어 번역) 사본은 이 대목을 "이블르암에서"로 읽으며, 이를 따르는 학자와 번역본도 있다. 이블르암은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를 친 곳 근처로 기록되어 있다(열왕기하 9:27).
- 동명이인: 우리말 성경에서 같은 "스가랴"로 표기되는 인물이 여럿 있다. 포로 귀환 뒤에 활동한 선지자 스가랴, 여호야다의 아들 제사장 스가랴(역대하 24장) 등이 그 예이며, 이 왕과는 다른 인물이다.
한국 교회에서
스가랴 왕은 기록이 짧아 단독 설교 본문으로 다뤄지는 일은 드물다. 주로 성경통독이나 열왕기 강해에서 짧게 언급된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히 성취된 예(예후 4대)나 북이스라엘이 몰락해 가는 과정의 한 장면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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