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역사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이집트 왕의 신하가 쓴 형식을 빌려, 모세오경이 알렉산드리아에서 72명의 유대 장로에 의해 그리스어로 번역된 경위를 전하는 고대 유대 문헌이다. 칠십인역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큰 유대인 공동체가 생겼다. 이들은 그리스어를 일상어로 썼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경을 읽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율법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칠십인역의 출발점이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이 번역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전하는 그리스어 문헌이다. 글쓴이는 자신을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신하 아리스테아스라고 소개하고, 형제 필로크라테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한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기원전 3세기 전반에 이집트를 다스린 왕이다. 성경에 들어간 책이 아니라 성경 밖의 고대 문헌이며, 어느 교회 전통에서도 정경(교회가 성경으로 인정한 책의 목록)에 넣지 않는다.
전개
편지가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맡은 팔레론의 데메트리오스가 유대인의 율법서도 도서관에 갖추자고 왕에게 건의한다.
- 왕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엘르아살(엘레아자르)에게 사절을 보내 번역자를 청한다. 사절단에는 아리스테아스도 들어 있다.
- 엘르아살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지파마다 여섯 명씩, 모두 72명의 장로를 율법 사본과 함께 보낸다.
- 왕은 이레 동안 잔치를 베풀며 장로들에게 통치와 삶에 관해 묻고, 장로들의 지혜로운 대답에 감탄한다.
- 장로들은 파로스 섬에서 서로 의논하며 번역을 진행해 72일 만에 마친다.
- 번역이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 앞에서 낭독되고, 공동체는 이를 승인한다. 그리고 앞으로 누구도 이 번역을 고치지 못하도록 저주를 선언한다.
편지에는 엘르아살이 음식 규례를 비유적으로 풀어 변호하는 대목과, 예루살렘 성전을 묘사하는 대목도 들어 있다.
결과와 영향
72명이라는 숫자는 뒤에 어림수 70으로 불렸다. '칠십인역'(라틴어 Septuaginta, '칠십')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편지는 모세오경의 번역만 다루지만, 이 이름은 뒤에 그리스어 구약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며 더 커졌다. 유대 철학자 필론은 번역자들이 따로 작업했는데도 같은 번역문을 내놓았다고 전하며 이를 하나님의 영감으로 설명하였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편지의 내용을 풀어 소개하였다. 초대 교부들 가운데에는 장로들이 각자 독방에서 번역했다는 이야기를 전한 이들도 있다.
이 전승은 그리스어 번역의 권위를 둘러싼 논의로 이어졌다. 히에로니무스는 독방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칠십인역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고 보았다.
평가
오늘날 학자들은 대체로 이 편지를 왕의 신하가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한 유대인이 실존 인물의 이름을 빌려 쓴 위작으로 본다. 그 근거로는 다음이 꼽힌다.
- 데메트리오스가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도서관을 맡았다는 서술처럼 연대가 맞지 않는 대목이 있다.
- 이방인 신하가 쓴 글치고는 유대 율법을 지나치게 높인다.
쓰인 시기는 기원전 2세기 무렵으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학자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편지가 위작이라는 주장은 17세기 말 영국 학자 험프리 호디의 연구로 널리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지를 쓴 목적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그리스어 번역이 히브리어 원문만큼 믿을 만하다는 것을 내세우려 했다는 해석, 그리스 세계에 유대 율법의 지혜를 변호하려 했다는 해석이 대표적이다. 다만 세부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모세오경이 기원전 3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는 큰 줄기는 대체로 인정된다.
이 편지가 전하는 번역, 곧 칠십인역을 대하는 태도는 교회 전통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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