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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약 347~420)는 라틴어 성경 '불가타'를 번역한 고대 서방 교회의 성경학자이자 교부이다. 천주교에서는 '성 예로니모'라 부른다.

생애

로마 제국 달마티아 지방의 스트리돈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에 태어났다. 스트리돈은 오늘날 발칸반도 북서부에 있던 곳으로,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젊은 시절 로마에서 문법학자 도나투스에게 라틴 문학과 수사학(연설과 글쓰기의 기술)을 배웠다. 이후 동방으로 가서 시리아 칼키스 사막에서 은수(隱修), 곧 홀로 떨어져 수도 생활을 했고, 이때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에게 히브리어를 배웠다고 전한다. 안디옥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382년 무렵 로마로 돌아와 교황 다마수스 1세의 비서로 일했다. 다마수스가 죽은 뒤 로마를 떠났고, 386년 무렵부터 베들레헴에 머물렀다. 로마 귀족 여성 파울라와 함께 이곳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남은 생애 동안 성경 번역과 주석에 힘쓰다가 420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불가타 번역: 다마수스의 요청으로 당시 쓰이던 라틴어 복음서 번역을 고쳤고, 이어 구약성경 대부분을 히브리어 원문에서 새로 번역했다. 이전 라틴어 번역은 대개 그리스어 칠십인역을 옮긴 것이었다. 그는 '히브리어 진리'(Hebraica veritas)라는 말로 원문을 앞세웠다. 이 번역이 뒤에 불가타로 불리며 천여 년 동안 서방 교회의 표준 성경이 되었다.
  • 정경에 대한 견해: 히브리어 성경에 없고 칠십인역에만 있는 책들을 '외경'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관례에 따라 그 책들의 일부를 번역했다.
  • 저술과 논쟁: 여러 성경 주석과 많은 편지, 교회 저술가들의 약전인 『명인록』을 남겼다. 383년 무렵에는 『헬비디우스 반박』을 썼다. 이 글에서 성경의 '주의 형제들'이 마리아의 친자녀가 아니라 사촌이라고 주장하고, 주의 형제 야고보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보았다. 이 해석은 서방 교회에 널리 퍼졌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천주교는 그를 '성 예로니모'로 기린다. 천주교는 그를 교회 학자로 공경하며, 9월 30일을 그의 축일로 지킨다.

개신교에서는 원어 성경을 앞세운 그의 태도와 외경을 구분한 견해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정경 이해의 역사적 근거로 자주 거론된다. 개역개정 등 한국 개신교 성경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모두 66권을 싣는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교파를 가리지 않고 설교와 성경공부 교재에 자주 인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가

성경 번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며, 번역가의 수호성인으로도 불린다. 비판도 있다.

  • 원문 번역에 대한 우려: 아우구스티누스는 편지에서 칠십인역 대신 히브리어 원문을 따르는 번역이 교회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불가타의 오역 논란: 종교개혁 시기의 인문주의자와 개혁자들은 원문과 대조해 불가타의 일부 번역을 문제 삼았다. 대표적인 예로 마태복음 4:17의 '회개하라'가 '보속(죄에 대한 벌을 갚는 행위)을 행하라'로 읽힐 수 있는 표현이 거론된다. 또 출애굽기 34:29의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뿔이 났다'로 옮긴 번역도 자주 언급된다.
  • 논쟁 태도와 금욕 사상: 루피누스 등과 논쟁하며 보인 거친 표현을 두고 비판이 있다. 결혼보다 동정과 금욕을 지나치게 높였다는 지적도 받는다.
  • 주의 형제들에 대한 해석: 주의 형제들을 사촌으로 본 해석은 천주교와 정교회의 마리아론과 맞닿아 있다. 개신교에서는 이들을 마리아가 예수 이후에 낳은 자녀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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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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