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굼
성경 · 개념·용어
달리다굼은 예수가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릴 때 한 아람어 말로, 마가복음 5:41에 나오며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이다.
성경 본문
달리다굼은 마가복음 5:41에 나온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로 옮긴다.
이야기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회당의 책임자인 야이로가 죽어 가는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께 청한다. 예수가 그 집으로 가는 길에 혈루증 여인이 고침을 받는다. 그사이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예수는 베드로, 야고보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방에 들어가 이 말을 한다. 열두 살 된 소녀는 곧 일어나 걷는다. 예수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른다(마가복음 5:21-43). 같은 사건은 마태복음 9장과 누가복음 8장에도 실려 있다. 다만 아람어 낱말을 그대로 적은 것은 마가복음뿐이며, 누가복음 8:54는 "아이야 일어나라"라고 그 뜻만 전한다.
낱말과 배경
이 말은 예수 시대 유대 땅에서 일상어로 쓰이던 아람어(구약 히브리어와 가까운 셈어 계통의 말)를 그리스어 글자로 옮겨 적은 것이다. "달리다"는 어린 소녀를 다정하게 부르는 말이고, "굼"은 "일어나라"는 뜻의 명령형이다. 그리스어 사본에 따라 "굼(쿰)"과 "구미(쿠미)" 두 형태가 함께 전해진다.
마가복음에는 이 밖에도 "에바다"(7:34), "고르반"(7:11), "아바"(14:36),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15:34) 같은 아람어 표현이 원어대로 실려 있다. 마가는 그때마다 뜻을 풀어 준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아람어를 모르는 이방인 독자를 배려한 것으로 보며, 예수의 실제 말소리를 보존하려 한 흔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의 언어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이 사건은 나사로의 부활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린 일(누가복음 7:11-17)과 함께,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죽은 자 살림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사도행전 9:40에서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에게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사건과 표현이 닮아 있어, 여러 해석자가 두 본문을 나란히 놓고 읽는다.
해석과 논점
- "잔다"는 말: 예수는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마가복음 5:39)고 말한다. 대다수 해석자는 이 말을 죽음을 잠에 빗댄 표현으로 읽는다. 요한복음 11:11에서 나사로의 죽음을 "잠들었다"고 한 것도 같은 표현이다. 누가복음 8:53 역시 사람들이 아이가 죽은 줄 알았다고 적는다. 반면 아이가 실제로는 죽지 않았던 것이라고 보는 소수 견해도 있다.
- 소생과 부활: 많은 신학자는 소녀가 다시 살아난 일을 이전의 몸으로 돌아온 '소생'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일어난 예수의 부활과 구별한다.
- 주문이 아니다: 원어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말을 특별한 효력이 있는 주문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해석자들은 대체로 능력의 근원이 낱말 자체가 아니라 말하는 이에게 있다고 본다.
- 오늘의 신유와의 관계: 오순절·은사주의 계열에서는 이 본문을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신유(병 고침)의 근거로 읽기도 한다. 반면 은사 중지론에 가까운 쪽은 예수의 메시아 됨을 드러낸 특별한 표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은사 중지론과 지속론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달리다굼"은 낙심한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예수의 말씀을 상징하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설교 제목이나 묵상 글에서도 자주 쓰인다.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