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성경 · 기적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은 예수가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열두 살 딸을 다시 살린 기적이다.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에 모두 실려 있다.
본문과 내용
이 사건은 마가복음 5:21-43, 누가복음 8:40-56, 마태복음 9:18-26에 나온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따르면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 앞에 엎드려 죽어 가는 딸을 고쳐 달라고 청한다. 예수가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 혈루증 여인이 옷에 손을 대어 낫는 일이 일어나고, 그사이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예수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마가복음 5:36)고 말한다. 집에 이르러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하자 아이가 일어나 걸었다. 마태복음은 더 짧게 적는다. 아버지를 이름 없이 "한 관리"라고만 부르고, 그가 처음부터 딸이 "방금 죽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기록한다.
배경
회당장은 회당의 예배와 운영을 맡은 지도자로, 지역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달리다굼"은 예수 당시 유대 땅의 일상어였던 아람어이다. 마가는 이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마가복음 5:41)로 풀어 적었다. 마태복음은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언급한다(마태복음 9:23). 이는 장례 때 곡하는 사람과 악사를 두던 당시 유대의 관습으로 이해된다. 율법에서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진다고 보았는데(민수기 19:11), 예수가 죽은 아이의 손을 잡은 장면은 이 배경에서 자주 해석된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복음서에서 예수가 죽은 사람을 살린 이야기는 이 사건, 나인 성 과부의 아들(누가복음 7:11-17), 나사로의 부활(요한복음 11장)이 있다. 구약의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열왕기상 17장, 열왕기하 4장)와 비슷한 점이 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린 장면(사도행전 9:40)도 비교된다. 이 아이는 훗날 다시 죽었을 것이므로, 신학에서는 이 사건을 마지막 날의 부활과 구분해 '소생'으로 부르기도 한다. 동시에 그 부활을 미리 보여 주는 표징으로 읽기도 한다.
해석과 논점
-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일부 학자는 이 말을 근거로 아이가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고 보았다. 반면 전통적 해석은 성경이 죽음을 잠에 빗대는 표현으로 읽는다(요한복음 11:11,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4절). 누가복음은 사람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었다고 적는다(누가복음 8:53).
- 끼워 넣은 구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혈루증 여인 이야기를 이 사건 가운데 끼워 넣었다. 여인이 앓은 기간과 아이의 나이가 모두 열두 해라는 점, 두 사람 모두 '믿음'과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하는 해석이 많다.
- 복음서 사이의 차이: 세 복음서의 서술이 다른 점을 두고, 사건을 조화시켜 읽는 쪽과 각 복음서의 강조점이 다르다고 보는 쪽이 있다(공관복음 문제). 예수가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한 명령(마가복음 5:43)은 마가복음의 '메시아 비밀' 주제와 함께 논의된다.
- 덧붙여진 이야기: 성경에는 아이의 이름과 야이로의 이후 행적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구절은 믿음을 주제로 한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죽음을 잠에 빗댄 예수의 말은 장례예배와 위로 설교에서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본문으로 쓰인다. 신유를 강조하는 교회에서는 치유와 믿음의 본보기로 이 사건을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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