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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

인물 · 성경 인물

나사로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베다니 사람으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이다. 죽은 지 나흘 만에 예수에 의해 다시 살아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성경의 기록

나사로는 요한복음 11~12장에 나온다. 이름은 히브리 이름 '엘르아살'의 그리스어 형태로,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에 살았고,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이다.

  • 병과 죽음: 자매들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요한복음 11:3)라고 예수께 알렸다. 예수는 그곳에 이틀을 더 머문 뒤 베다니로 갔고, 그때 나사로는 이미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 지나 있었다.
  • 예수의 말씀과 눈물: 예수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1:25)라고 말했고,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요한복음 11:35).
  • 다시 살아남: 예수가 "나사로야 나오라"(요한복음 11:43)고 부르자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무덤에서 나왔다.
  • 그 뒤의 일: 이 일을 계기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했다(요한복음 11:47-53). 유월절 엿새 전 베다니에서 열린 잔치에는 나사로도 함께 앉아 있었고(요한복음 12:1-2), 대제사장들은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다(요한복음 12:10-11).

성경 안에서의 의미

요한복음에서 나사로를 살린 사건은 예수의 공생애 표적 가운데 마지막이자 가장 큰 표적으로 놓인다. 바로 뒤에 예수의 수난이 이어지므로, 이 사건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앞서 가리키는 이야기로 읽힌다. 다만 나사로는 다시 살아난 뒤에도 언젠가 다시 죽을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는 이 사건을 다시 죽지 않는 예수의 부활과 구별한다.

해석과 논점

  • 다른 나사로와의 구분: 누가복음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는 비유 속 인물로, 베다니의 나사로와는 다른 인물로 본다. 이 이야기는 예수의 비유 가운데 등장인물에게 이름이 붙은 드문 경우이다. 두 이야기 사이에 문학적 연관이 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나뉜다.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죽음 이후의 상태와 천국과 지옥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된다. 다만 이를 비유로 보아 사후 세계를 문자 그대로 묘사한 것으로 읽지 않는 견해와, 실제 상황을 보여 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 '사랑하시는 자': 요한복음 11:3, 11:5에서 예수가 나사로를 사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는 요한복음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나사로라고 보지만, 이는 소수 견해이다.
  • 성경 밖 전승: 나사로가 그 뒤 키프로스로 건너가 감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정교회 전통에 전해진다. 서방에는 그가 남프랑스로 갔다는 전설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정교회는 종려주일 전날을 '나사로의 토요일'로 기념한다.

한국 교회에서

요한복음 11:25-26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는 장례예배에서 자주 봉독된다. "나사로야 나오라"는 구절은 절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하는 설교 본문으로 널리 쓰인다. 교회학교에서는 예수가 친구를 위해 우신 장면과 죽은 사람을 살린 이적을 중심으로 이 이야기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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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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