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을 잔잔하게 하심
성경 · 기적
예수가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배 안에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잠잠하게 한 기적이다. 마태·마가·누가복음에 모두 실려 있다.
본문과 내용
마태복음 8:23-27, 마가복음 4:35-41, 누가복음 8:22-25에 실려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등을 가르친 날 저녁에 일어난 일로 나온다. 예수가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여 제자들과 배를 탔고, 다른 배들도 함께 갔다. 큰 광풍이 일어 물결이 배에 들어찼지만 예수는 고물(배의 뒷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자고 있었다. 제자들이 그를 깨우며 죽게 된 자신들을 돌보지 않느냐고 하자, 예수는 바람을 꾸짖고 바다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왜 무서워하며 믿음이 없느냐고 물었다. 제자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느냐고 서로 말했다.
세 복음서의 기록에는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주여 구원하소서" 하고 외치고, 예수가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고 먼저 꾸짖은 뒤에 바람을 잠재운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세 복음서 모두 이 이야기 바로 뒤에 거라사 광인 치유를 놓는다.
배경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낮은 분지에 있고 주위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돌풍이 일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자 가운데에는 이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도 있었다. 마가복음 4:39의 "고요하라"는 헬라어로 '입에 재갈을 물리다'라는 뜻의 동사다. 마가복음 1:25에서 예수가 귀신에게 "잠잠하고" 나오라고 꾸짖을 때에도 같은 낱말이 쓰였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구약에서 바다와 풍랑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로 그려진다. 시편 89:9과 107:29이 그 예다. 그래서 제자들의 마지막 물음은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기독론의 물음으로 읽힌다. 배 안에서 잠든 사람과 폭풍이라는 구도는 요나 1장과 닮았다. 비슷한 장면은 물 위를 걸으심에도 나오지만, 두 사건은 서로 다른 기사이다.
해석과 논점
- 기독론적 읽기: 대부분의 교회 전통은 이 사건을 예수의 신적 권위를 드러내는 기적으로 읽는다.
- 교회론적 읽기: 초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배를 교회의 모형으로 해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로 배는 시련 속의 교회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자주 쓰였다.
- 믿음과 제자도: 마가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마태와 누가는 이를 조금 누그러뜨려 적는다. 이 차이는 공관복음 문제와 관련해 연구된다.
- 역사성: 복음주의와 보수 교단들은 이 사건을 실제로 일어난 기적으로 본다. 일부 비평 학자들은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이 담긴 이야기로 이해한다.
- 본문 밖의 덧붙임: 설교에서는 흔히 예수가 지쳐서 잠들었다거나, "건너가자"는 말이 안전한 도착을 약속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본문은 이런 내용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이 본문이 고난과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라는 '인생의 풍랑' 설교에 자주 쓰인다. 주일학교 공과에서도 잘 알려진 기적 이야기로 다루어진다.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