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라테란 공의회
역사
1215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로마 라테란 대성당에서 연 중세 최대 규모의 공의회이다. 무로부터의 창조와 성찬의 화체를 담은 신앙고백, 해마다 한 번 이상 고해하라는 규정 등 71개 법령을 정했다.
배경
라테란 공의회는 로마의 라테란 대성당에서 열린 공의회를 말한다. 12세기에 세 차례 열렸고, 1215년의 회의가 네 번째다. 이 회의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재위 1198~1216) 때 열렸는데, 이 시기는 중세 교황권이 정점에 이른 때로 평가된다.
당시 서방 교회는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었다.
- 남프랑스에서 카타리파(알비파)가 퍼지고 있었다. 이들은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가 서로 다른 근원에서 나왔다고 보는 이원론을 가르쳤다. 1209년에는 이들을 겨냥한 알비 십자군이 시작되었다.
-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면서 동방 교회와의 관계가 크게 틀어졌다.
- 성직자의 기강을 바로잡고 성지를 되찾는 일도 과제였다.
인노켄티우스 3세는 1213년 공의회 소집을 알렸다.
전개
공의회는 1215년 11월에 열렸고, 11월 30일까지 세 차례 회기를 가졌다. 주교 400여 명과 수도원장 등을 합해 1천 명이 넘는 성직자가 모였고, 세속 군주의 사절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 측이 미리 준비한 법령(canon, 교회법 조항) 71개가 큰 토론 없이 승인되었다고 전해진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1법령(신앙고백):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무(無)로부터 창조하였다고 고백한다. 마귀도 본래 선하게 지음받았으나 스스로 악해졌다고 밝혀 이원론을 배격한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겉모양은 남은 채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고 하며 '실체 변화'(transsubstantiatio, 화체)라는 말을 썼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문장도 들어 있다.
- 제2·3법령: 피오레의 요아킴이 내놓은 삼위일체 견해를 정죄하였다. 또 이단을 처리하는 절차를 정하고 세속 권력에 협조를 요구하였다.
- 제21법령: 분별할 나이가 된 신자는 해마다 적어도 한 번 자기 교구 사제에게 고해하고 부활절 무렵 성찬을 받도록 하였다.
- 기타: 혼인을 금하는 친족 범위를 줄이고 비밀 결혼을 금하였다. 성직자가 신명재판(시죄법)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유대인과 무슬림에게 구별되는 복장을 요구하였고, 새 십자군을 결의하였다.
결과와 영향
화체라는 용어는 이 회의에서 처음 공의회 문서에 들어갔고, 이후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해마다 고해하라는 규정은 중세 말 평신도의 신앙생활과 사제 교육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신명재판에서 성직자가 물러나면서 유럽에서 이 재판 방식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유대인 복장 규정과 이단 처벌 조항은 뒤에 차별과 종교재판의 근거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평가
천주교는 이 회의를 제12차 보편 공의회로 센다. 정교회는 이 회의를 인정하지 않으며, 1204년 이후 라틴 교회의 우위를 전제한 조항에 반발해 왔다.
개신교는 공의회의 권위를 성경 아래에 두기 때문에, 이 회의의 결정을 조항마다 따로 평가한다.
- 화체설: 종교개혁 때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이 화체설을 비판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9장과 성공회의 39개 신조 제28조도 화체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루터교는 그리스도의 실제 임재를 고백하면서도 화체설은 따르지 않는다. 개혁교회와 침례교 등도 저마다 다르게 이해하며, 자세한 내용은 성찬 논쟁에서 다룬다.
- 고해 의무: 개신교는 사제 앞에서 하는 의무 고해 대신 하나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는 것을 강조한다(요한일서 1:9).
- 무로부터의 창조: 이 고백은 개신교도 대체로 함께 받아들인다. 근거로는 히브리서 11:3 등 성경 본문을 든다.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