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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4장 9-11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계시록 14:9-11

9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는 자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는 셋째 천사의 경고이다. '짐승의 표'의 정체와 지옥 형벌의 성격을 둘러싼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요한계시록 14장은 어린 양과 함께 시온산에 선 십사만 사천 명의 환상으로 시작한다(요한계시록 14장 1-5절). 이어 세 천사가 차례로 외친다. 첫째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하고, 둘째 천사는 바벨론의 무너짐을 알린다. 이 구절은 셋째 천사의 외침이다. 13장에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이 사람들에게 경배와 표를 강요하는 장면이 나온 뒤(요한계시록 13장 1-10절), 그 강요를 따르는 자가 받을 결과를 선포한다. 바로 다음 절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요한계시록 14:12)라고 이어진다.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는 물을 타지 않은 포도주를 가리킨다. 고대에는 포도주에 물을 섞어 마셨으므로, 이 표현은 누그러뜨리지 않은 진노를 나타낸다. "불과 유황"은 소돔 심판(창세기 19장)을,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는 에돔 심판을 묘사한 이사야 34:10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해석

  • 목회적 경고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구절의 일차 목적을 박해 아래 있는 교회에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견디라고 권하는 데서 찾는다. 이마의 표는 하나님의 종들 이마에 찍힌 인(요한계시록 7장 3절)과 짝을 이루며, 누구에게 충성하느냐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해된다.
  • 역사적 읽기(과거주의): 1세기 로마 황제 숭배를 강요하던 상황을 배경으로 읽는다.
  • 미래적 읽기(미래주의): 마지막 때에 실제로 있을 경배 강요와 표를 예고한 것으로 읽는다.
  • 영원한 형벌로 보는 읽기: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다수 전통은 이 구절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끝없이 받는 형벌, 곧 지옥의 근거 구절로 본다.
  • 소멸로 보는 읽기: 영혼은 본래 죽지 않는 것이 아니며 악인은 결국 소멸한다고 보는 조건적 불멸론에서는 "올라가는 연기"를 멸망이 영원히 남긴 흔적으로 읽는다. 존 스토트가 이런 견해에 조심스럽게 공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쟁과 쟁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14장 6-12절을 '세 천사의 기별'이라 부르며 자기 교회의 정체성과 연결한다. 이 교단은 마지막 때의 짐승의 표를 강제된 일요일 예배와, 하나님의 인을 안식일 준수와 관련지어 해석한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은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안식일과 주일 참조).

'짐승의 표'를 바코드, 몸에 심는 칩, 특정 백신 같은 현대 기술과 직접 동일시하는 주장도 되풀이되어 왔다. 이에 대해 여러 신학자와 목회자는 상징 언어를 문자적으로 읽고 문맥을 떠나 인용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이 구절은 짐승의 표와 666을 다루는 종말론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 백신을 짐승의 표와 연결하는 주장이 돌았고, 여러 교계 언론과 목회자들이 이를 반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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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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