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요엘 2장 32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엘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요엘 2장 32절은 여호와의 날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다고 약속하는 구절이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사도행전 2:21)와 바울의 로마서 10:13에 인용되어 구원의 보편성과 예수의 주 되심을 말하는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문맥

요엘서는 메뚜기 재앙을 계기로 "여호와의 날", 곧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을 경고한다. 이어 마음을 찢는 회개를 촉구하고(요엘 2장 12-14절) 땅의 회복을 약속한다(요엘 2장 23-27절). 그 뒤로 "모든 육체"에 영을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2:28-29)과 하늘과 땅의 징조(2:30-31)가 나온다. 32절은 이 단락의 결론이다. 두렵고 큰 날이 와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구원을 얻고, 시온과 예루살렘에 "피할 자"(살아남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2:28-32를 3장으로 나누기 때문에 이 구절은 원문에서 3:5에 해당한다. "나 여호와의 말대로"라는 표현이 오바댜 1:17의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를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해석

  • 문맥에 따른 읽기: 일차적으로는 심판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으로 읽는다. 구약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예배하고 의지하며 도움을 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 신약의 읽기: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단락을 인용하며 성령 강림을 그 성취로 제시했다(사도행전 2장 16-21절).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맥락에서 이 구절 앞부분을 인용했다(로마서 10장 13-14절). 두 인용 모두 그리스어 구약(칠십인역)을 따라 '여호와'를 '주'로 옮긴 표현을 쓰고, 이 문맥에서 '주'는 예수를 가리킨다. 그래서 여러 교회 전통은 이 인용을 예수의 신성을 보여 주는 근거로 본다.
  • "부르다"의 두 방향: 원문에서는 사람이 여호와를 "부르는" 것과 여호와가 사람을 "부르시는" 것에 같은 동사(카라)가 쓰인다. 칼빈주의 전통은 구절 끝의 "부름을 받을 자"에 주목해 구원을 하나님이 먼저 부르시는 일(소명)과 연결하는 경향이 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 신학 전통은 "누구든지"에 무게를 두어 모든 사람에게 열린 초대로 읽는 경향이 있다. 베드로가 설교 끝에 말한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사도행전 2장 39-41절)을 이 구절 후반부의 반향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 오순절 계열의 읽기: 오순절주의 교회는 2:28-32 전체를 마지막 때에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본다. 이 약속이 오순절 사건뿐 아니라 오늘날의 성령 운동에서도 이어진다고 이해한다.
  • 세대주의의 읽기: 세대주의는 오순절을 부분적인 성취로 보고, 시온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가 구원받는 일은 장래에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질 일로 읽는 경우가 많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이 구절을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뜻으로 문맥 없이 인용하는 데에는 비판이 있다. 바울은 인용 바로 뒤에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라고 덧붙여(로마서 10장 14-15절) 부르는 일이 믿음에서 나온다는 점을 밝힌다. 요엘서도 이 약속 앞에 회개를 먼저 둔다. 이런 이유로 여러 교단은 이 구절의 "부름"을 한 번의 말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께 의지하는 태도 전체로 설명한다.

한국 교회에서

성령강림절 무렵 설교에서 사도행전 2장과 함께 다루어지는 일이 많다. 전도 설교에서는 로마서 10:13의 형태로 구원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함께 읽을 구절

함께 보기 8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

로그인하고 토론에 참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