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편지
성경 · 개념·용어
예레미야의 편지는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유다 포로들에게 우상 숭배를 경계하며 보냈다는 형식의 짧은 글이다. 천주교·정교회는 성경에 포함하고, 개신교는 외경으로 분류한다.
성경에서의 위치와 내용
예레미야의 편지는 구약 칠십인역(그리스어 구약)에 독립된 한 권으로 실려 있다. 라틴어 불가타와 이를 따른 천주교 성경, 한국의 공동번역에서는 바룩의 이름이 붙은 바룩서의 마지막 장인 6장으로 들어가 있다. 개신교가 쓰는 개역개정에는 실리지 않았다.
본문은 70여 절로 된 짧은 글이다. 첫머리에서 예레미야가 바벨론 왕에게 사로잡혀 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밝힌다. 이어 바벨론의 신상(神像, 신을 본떠 만든 형상)이 장인의 손으로 나무에 금·은을 입혀 만든 물건일 뿐임을 되풀이해 조롱한다. 우상은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녹이나 먼지에서 제 몸도 지키지 못하며, 제사장들이 바친 예물을 빼돌린다고 묘사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신이 아니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취지의 후렴이 여러 번 나온다.
배경
글의 설정은 바벨론 포로 시기이다. 편지 첫머리는 포로 생활이 "일곱 세대"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는데, 예레미야서의 "칠십 년"(예레미야 29장 4-14절)과 표현이 다르다. 우상을 비웃는 내용은 예레미야 10장 1-16절, 이사야 44장 9-20절, 시편 115편과 가깝다. 현재 전해지는 본문은 그리스어이고, 원래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쓰였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린다. 사해 사본 가운데 쿰란 제7동굴에서 이 글의 일부로 알려진 그리스어 조각이 나왔다. 기록 연대도 확정되지 않았으며 대체로 페르시아 시대에서 헬라 시대 사이로 추정한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이 글의 중심 주제인 우상 숭배 비판은 구약 선지서 전통을 잇는다. 신약은 이 글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다. 다만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은 고린도전서 8장 4-6절, 사도행전 17장 29절, 요한일서 5장 21절 등에서 이어진다. 마카베오기 하권 2장에는 예레미야가 포로들에게 금·은 우상에 미혹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언급이 있어, 이를 이 편지와 관련짓는 견해도 있다.
해석과 논점
- 정경 여부: 천주교는 바룩서 6장으로 받아들여 제2경전(나중에 정경으로 인정된 책)에 포함한다. 정교회는 칠십인역을 따라 성경으로 읽는다. 개신교는 대체로 외경(정경 밖의 책)으로 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은 외경을 영감된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성공회 전통은 외경을 교훈을 위해 읽을 수 있으나 교리의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 저자 문제: 전통적으로는 예레미야가 쓴 글로 전해졌다. 그러나 히에로니무스를 비롯해 고대부터 이를 의심한 사람들이 있었고, 현대 학계에서는 후대 사람이 예레미야의 이름을 빌려 쓴 글로 보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한국 교회에서
천주교 신자는 성경의 일부로 읽는다. 개신교에서는 공동번역을 통해 접할 수 있으나 예배 봉독이나 설교 본문으로 쓰이는 일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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