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
성경 · 지명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뒤 처음 진을 친 곳으로, 여리고 동쪽에 있었다. 기념 돌, 할례, 유월절의 장소였고, 사사 시대와 왕정 초기에는 제사와 집회의 중심지였다.
성경 본문
길갈이 처음 크게 다뤄지는 곳은 여호수아서다. 이스라엘은 첫째 달 십일에 요단강을 건넜다. 그리고 여리고 동쪽 경계의 길갈에 진을 쳤으며, 강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그곳에 세웠다(여호수아 4:19-20). 이 돌은 하나님이 요단을 마르게 하신 일을 후손에게 알리는 기념물이었다.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는 이곳에서 할례를 받았다. 이때 하나님은 "오늘 내가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그곳 이름이 길갈이 되었다고 본문은 설명한다(여호수아 5:2-9). 이스라엘은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그 이튿날부터 만나가 그쳤다(여호수아 5:10-12). 그 뒤 길갈은 가나안 정복 기간에 본진 역할을 했다.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를 찾아온 곳도(여호수아 9:6), 갈렙이 헤브론을 요청한 곳도(여호수아 14:6) 길갈이다.
사사기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왔다(사사기 2:1). 에훗은 길갈 근처의 "돌 뜨는 곳"에서 돌아서서 모압 왕 에글론을 죽였다(사사기 3:19, 26). 이 낱말은 우상이나 새긴 돌을 뜻하기도 하여 번역본마다 옮긴 말이 다르다.
사무엘상에서 길갈은 사무엘이 해마다 순회하던 곳 가운데 하나였다(사무엘상 7:16). 사울은 이곳에서 왕으로 세워졌다(사무엘상 11:14-15). 그러나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번제를 드린 곳도(사무엘상 13:8-14), 아말렉 전쟁 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선언을 들은 곳도(사무엘상 15:12-33) 길갈이었다. 압살롬의 반란이 끝난 뒤 유다 사람들은 길갈로 와서 돌아오는 다윗을 맞았다(사무엘하 19:15).
배경
길갈은 요단 계곡의 여리고 평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떠난 길갈(열왕기하 2:1)과 엘리사가 머문 길갈(열왕기하 4:38)이 여호수아의 길갈과 같은 곳인지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견해가 갈린다. 열왕기하 2장에서 길갈에서 벧엘로 "내려갔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길갈'은 흔히 '둥근 돌무더기'로 풀이되며, 본문은 이 이름을 '굴리다'라는 뜻의 동사와 연결한다.
예언서의 길갈
왕국 시대 예언자들은 길갈을 형식적인 제사가 행해지는 곳으로 비판했다. 호세아는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다"고 했다(호세아 9:15, 4:15, 12:11 참조). 아모스는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다"고 경고했다(아모스 4:4, 5:5). 반면 미가는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 있었던 일을 기억하라며 길갈을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증거로 언급한다(미가 6:5).
해석과 논점
길갈이라는 지명은 신약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일부 해석자는 요단 도하와 길갈의 할례를 세례와 연결해 읽는다. 할례와 세례를 함께 언급하는 골로새서 2:11-12에 기대는 예표론적(구약 사건을 신약의 그림자로 보는) 해석이다. 다만 성경 본문이 둘을 직접 잇지는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 설교에서 길갈은 "길갈로 돌아가라"는 식으로 자주 다뤄진다. 이때 길갈은 신앙의 출발점과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는 자리, 초심 회복의 상징으로 쓰인다. 이런 적용은 본문 자체의 진술이라기보다 설교적 해석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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