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9장 20-21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이사야 59:20-21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한 이사야 59장의 결론으로, 구속자가 죄에서 돌이킨 이들에게 오고 하나님의 영과 말씀이 대대로 떠나지 않으리라는 언약을 약속한다.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하며 인용해 자주 논의된다.
문맥
이사야 59장은 구원이 더딘 까닭이 하나님의 무능이 아니라 백성의 죄에 있다는 선언(59:1-2)으로 시작한다. 이어 백성이 죄를 고백하는 대목(59:9-15)이 나온다. 그다음 공의를 행할 사람이 없음을 본 여호와가 친히 공의를 갑옷으로 입고 나서는 장면(59:16-19)이 이어진다. 바울은 이 장면의 표현을 에베소서 6장 10-18절에서 다시 쓴다. 20-21절은 이 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구원 약속이며, 60장의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회복 선포로 넘어간다. 비평학계는 56-66장을 포로 귀환 이후의 '제3이사야'로 나누어 본다. 보수 신학계는 대체로 예언자 이사야 한 사람의 예언으로 본다.
20절의 '구속자'는 히브리어 '고엘'이다. 가난하거나 팔려 간 친족을 값을 치르고 되찾아 주는 가까운 친족을 가리키는 말로, 룻기의 보아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구속자가 임하는 대상은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 곧 죄에서 돌이킨 사람으로 한정된다. 21절은 하나님이 그들과 맺는 언약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영과 입에 둔 말씀이 후손 대대로 떠나지 않으리라고 약속한다. 21절의 '네'는 히브리어에서 단수이다. 그래서 이를 백성 전체로 볼지, 예언자나 '여호와의 종'으로 볼지에 대해 해석이 갈린다.
해석
- 역사적 읽기: 포로기 이후 공동체에게 주어진 회복 약속으로 보고, 구원을 회개와 연결한다.
- 신약의 읽기: 바울은 로마서 11:26-27에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하면서 이 구절과 이사야 27:9를 엮어 인용한다. 기독교 해석자들은 대체로 구속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본다.
- 영과 말씀의 언약으로 읽기: 21절을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과 연결해, 성령이 말씀과 함께 신자와 교회 안에 머무는 약속으로 읽는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라는 이사야 51:16의 표현과 짝을 이루는 구절로도 본다.
- 유대교의 읽기: 메시아적 구속의 약속으로 읽는다. 아침 기도 가운데 '우바 레치욘'(구속자가 시온에 오리라) 첫머리에 이 구절이 낭송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쟁과 쟁점
- 본문 차이: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구속자가 "시온에" 와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한다. 칠십인역(구약의 그리스어 번역)은 "시온을 위하여"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음을 돌이키리라"로 옮겼다. 로마서 11:26은 "시온에서 오사"라고 적어 두 본문 모두와 다르다. 이 차이를 두고 바울이 칠십인역을 바탕으로 시편 14:7 같은 다른 구절의 표현을 섞었다는 설명이 있다. 그리스도 사건의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고쳐 썼다는 설명도 제시된다.
- "온 이스라엘" 논쟁: 세대주의는 이 인용을 재림 때 민족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근거로 본다. 개혁주의 안에서는 견해가 셋으로 나뉜다. 장래에 유대인이 대규모로 회심한다는 견해가 있고, 역사 속에서 택함받은 유대인 전체를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칼뱅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마지막 견해는 갈라디아서 6장 16절의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연결된다.
- 번역: 개역한글의 "나의 신(神)"은 '영'을 뜻하는 옛 번역어이다. 개역개정은 이를 "나의 영"으로 고쳤다.
한국 교회에서
21절의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신앙의 대물림이나 다음 세대 교육을 다루는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가정예배를 권하는 자리에서도 인용된다. 한편 원래 문맥에서 이 약속은 회개한 언약 공동체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개별 가정이 받는 복의 보증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함께 읽을 구절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