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장 1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사도행전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 당시 아나니아에게 들은 말을 전하는 구절로, 세례와 죄 씻음을 함께 말한다. 그래서 세례가 구원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두고 교파마다 자주 인용하고 서로 다르게 읽는다.
문맥
사도행전 21장 끝에서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붙잡힌다. 그는 영문(兵營)으로 끌려가는 계단 위에서 유대인 군중에게 "히브리 말"(아람어로 보는 견해가 많다)로 변론한다(사도행전 22:1-21). 변론의 중심은 자신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겪은 회심(回心, 믿음으로 돌아섬) 이야기이다.
이 구절은 그 변론 속 인용이다. 눈이 먼 사울(바울)을 찾아온 아나니아가 "의인"(22:14), 곧 예수를 보았으니 이제 그분의 증인이 되라고 말한 뒤 덧붙인 권고이다. 바울은 아나니아를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22:12)으로 소개한다. 이는 유대인 청중을 의식한 표현으로 풀이된다. 같은 사건은 사도행전 9장과 26장에도 나온다. 다만 세례와 죄 씻음을 이렇게 직접 연결한 말은 22장에만 있다.
해석
원문에서 "일어나"는 분사이고, "세례를 받고"와 "죄를 씻으라"는 명령형이다. "주의 이름을 불러" 역시 분사이다. 이 문법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읽기가 갈린다.
- 천주교·정교회·루터교의 읽기: 천주교와 정교회, 루터교는 세례를 하나님이 죄 사함을 실제로 베푸시는 수단으로 본다. 이 구절을 베드로전서 3장 21절 등과 함께 그 근거로 든다.
- 개혁주의(장로교)의 읽기: 개혁주의 전통은 세례를 죄 씻음의 "표징과 인침"으로 이해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세례의 은혜가 세례를 베푸는 순간에 반드시 묶여 있지는 않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씻으라"는 말은 칭의가 세례라는 외적 표로 확인되고 고백되는 것을 가리킨다.
- 침례교와 복음주의 일부의 읽기: 이들은 죄 씻음을 "주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 곧 믿음과 연결해 읽는다. 세례는 이미 받은 구원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순종의 행위로 본다.
- 환원운동 계열의 읽기: 19세기 미국 스톤-캠벨 환원운동에서 나온 그리스도의교회 전통은 이 구절을 사도행전 2:38과 함께 인용한다. 이를 근거로 세례(침례)가 죄 사함을 받는 데 필요한 순종이라고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쟁과 쟁점
- 세례와 구원의 관계: 이 구절은 유아세례 논쟁, 세례 중생론(세례로 거듭난다는 견해)을 둘러싼 토론에서 각 진영이 함께 다루는 본문이다. 세례를 부정하는 교파는 없다. 쟁점은 세례가 죄 사함의 수단인지, 표지인지, 고백인지이다.
- 세례냐 침례냐: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세례"로 옮긴다. 침례교 쪽은 원어가 물에 잠김을 뜻한다며 "침례"를 쓴다. 이 문제는 세례와 침례 문서에서 다룬다.
- 사본 차이: 후대 다수 사본(공인본문)에는 "주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 비평 본문은 "그의 이름"으로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맥상 두 경우 모두 예수를 가리킨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함께 읽을 구절
- 사도행전 9:17-18 — 같은 사건을 서술한 본문
- 사도행전 2:39-41 — 오순절 설교 뒤의 세례
- 요엘 2:32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의 구원
- 로마서 10:13-14 — 요엘서를 인용한 바울의 설명
- 고린도전서 6:11 — 씻음과 의롭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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