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인물
요한 크리소스토무스(347년경~407)는 안디옥 출신의 교부로,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를 지냈다. 뛰어난 설교로 '황금의 입'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그리스어로 '황금의 입'이라는 뜻이다. 그의 설교가 훌륭하다는 데서 나온 별칭으로, 죽은 뒤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영어식으로는 '크리소스톰'이라고 하며, 한국 천주교는 '요한 크리소스토모'로 적는다. 교부(초대교회 시기에 교리와 신앙의 기틀을 놓은 교회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생애
지금의 튀르키예 남부에 있던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났다. 수사학자 리바니우스에게 배웠다고 전한다. 한동안 수도 생활을 하다가 381년 집사, 386년 사제가 되었고, 이후 약 12년 동안 안티오키아에서 설교자로 이름을 얻었다. 398년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성직자의 사치와 궁정의 부패를 비판하였고, 이 때문에 황후 에우독시아, 알렉산드리아 주교 테오필루스와 갈등을 빚었다. 403년 '참나무 교회회의'에서 면직되었다가 잠시 복귀했지만, 404년 다시 유배되었다. 407년 더 먼 곳으로 옮겨 가던 길에 숨졌다.
사역과 업적
- 설교: 마태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등 성경을 한 권씩 차례로 풀어 가는 연속 강해 설교를 많이 남겼다. 그는 본문을 상징적·비유적으로 읽는 알렉산드리아 쪽 해석보다 문자적·역사적 의미를 중시하는 안디옥 학파의 해석 전통에 속한다.
- 바울서신 주석: 바울 서신 해석은 후대 동서방 교회 모두에 큰 영향을 주었다. 로마서 16:7을 설교하면서 유니아를 여성으로 이해하고 "사도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칭찬한 대목이 특히 자주 인용된다.
- 저술과 예전: 『사제직에 관하여』는 목회자의 책임을 다룬 고전으로 읽힌다. 정교회가 가장 자주 드리는 성찬예배 예식서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오늘날 형태가 모두 그가 지은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구제를 강조하고 부의 나눔을 촉구한 설교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개신교 신학교의 교부학·설교학 수업에서 성경 강해 설교의 초기 모범으로 소개된다. 장 칼뱅이 그의 주석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개혁주의 전통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근래에는 여성 안수를 둘러싼 논의에서 그의 유니아 해석이 근거로 거론된다.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쪽은 초대교회가 여성 사도를 인정한 증거로 보고, 반대하는 쪽은 해당 구절의 해석이나 직분의 성격을 달리 본다. 성공회 기도서 전통에는 그의 이름이 붙은 기도문이 실려 왔다.
평가
천주교는 그를 교회학자로 존중하고, 정교회는 '세 성인 교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린다. 개신교도 대체로 성경 중심의 설교자로 높이 평가한다. 반면 386~387년 무렵 안티오키아에서 한 「유대인 반박」 설교들은 유대인을 거칠게 비난하는 표현을 담고 있다. 이 설교들은 후대 반유대주의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설교가 당시 유대교 회당에 드나들던 그리스도인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역사적 설명도 있지만, 그 표현이 지나쳤다는 데에는 많은 학자가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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