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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을 민족·종교 집단으로 미워하고 차별하는 태도와 행동을 말한다. 기독교 역사에서는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는 비난이 오랫동안 그 근거로 쓰였다.

배경

'반유대주의'는 독일어 'Antisemitismus'를 옮긴 말이다. 이 말은 1879년 무렵 독일 언론인 빌헬름 마르가 널리 퍼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계에서는 유대교 신앙을 배척하는 반유대교(종교적 적대)와 유대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보는 인종적 반유대주의를 구분하기도 한다.

기독교 안의 반유대 정서는 초대교회와 회당이 갈라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복음서의 수난 기사에는 대제사장 가야바와 산헤드린이 예수를 고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마태복음 27:25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는 구절이 있다. 후대 교회는 이 기사와 구절을 근거로 유대 민족 전체에 '신 살해(神殺害, 하나님을 죽인 죄)'의 책임을 돌렸다. 오늘날에는 이 본문이 당시 특정 지도층과 무리를 가리킨다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전개

  • 1096년: 제1차 십자군 때 라인강 유역의 유대인 공동체가 학살당했다.
  •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가 유대인에게 구별되는 옷차림을 하도록 정했다.
  • 1492년: 스페인이 유대인을 추방했다.
  • 1523년, 1543년: 마르틴 루터는 1523년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태어났다』에서 유대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1543년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하여』에서는 회당을 불태우라고 주장했다.
  • 19세기 말~20세기 초: 인종주의가 퍼졌다. 프랑스에서는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고, 러시아에서는 유대인의 세계 지배 음모를 꾸며 낸 위서(僞書, 가짜 문서) 「시온 장로 의정서」가 퍼졌다.
  • 1933~1945년: 나치 독일은 1935년 뉘른베르크법으로 유대인의 시민권을 빼앗았다. 이어진 홀로코스트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독일 개신교에서는 나치를 지지한 '독일 그리스도인' 운동과 이에 맞선 고백교회가 대립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유대인 박해에 저항하다 처형되었다.

결과와 영향

  •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는 제1차 총회에서 반유대주의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죄라고 선언했다.
  • 1965년 천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선언 「우리 시대」에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당시의 모든 유대인이나 오늘의 유대인에게 돌릴 수 없다고 밝혔다.
  • 1994년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는 루터의 반유대적 저술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 교회는 반유대주의를 직접 겪은 역사가 거의 없다.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회는 이스라엘 국가에 우호적인 경우가 많다. 반면 일부 설교와 온라인 매체에서 유대인 음모론이 퍼지거나, '바리새인'과 '유대인'을 율법주의의 상징으로만 쓰는 관행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평가

오늘날 대부분의 교단과 연합기관은 교회가 반유대주의를 낳고 키운 데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신학적 원인을 두고는 해석이 갈린다.

  • 일부 학자와 세대주의 쪽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했다고 보는 이른바 '대체신학'이 반유대주의의 토양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 언약신학과 개혁주의 쪽은 교회를 이스라엘의 연속으로 보는 이해가 곧 반유대주의는 아니라고 반론한다. 이들은 로마서 11장 28-29절을 들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유효함을 인정한다고 설명한다.

이스라엘 국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반유대주의를 어떻게 구분할지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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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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