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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야다

인물 · 성경 인물

여호야다는 남유다 아달랴와 요아스 시대의 제사장이다. 아달랴가 왕족을 죽일 때 살아남은 어린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 키운 뒤 왕으로 세우고, 백성과 언약을 갱신했다.

성경의 기록

여호야다는 열왕기하 11–12장과 역대하 22–24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이다. 역대하 24:6은 그를 대제사장이라 부른다. 역대하 22:11에 따르면 그의 아내는 여호람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다. 열왕기하 11:2는 같은 인물을 여호세바라 부른다.

유다 왕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왕족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나라를 다스렸다. 이때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어린 아들 요아스를 빼돌렸고, 요아스는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자랐다(열왕기하 11:1–3). 일곱째 해에 여호야다는 호위대 지휘관들을 불러 요아스를 보이고 성전 경비를 배치했다. 그리고 요아스에게 왕관을 씌우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으며, 아달랴는 처형되었다(열왕기하 11:4–16). 역대하 23장은 이 일에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이 함께했다고 더 자세히 적는다.

이어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도록 언약을 맺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웠다. 백성은 바알 신당을 허물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열왕기하 11:17–18). 요아스는 일곱 살에 왕이 되었다. 열왕기하 12:2는 그가 "제사장 여호야다가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 바르게 행했다고 기록한다.

성전 수리가 늦어지자 여호야다는 뚜껑에 구멍을 뚫은 궤를 두어 헌금을 모았다(열왕기하 12:9). 역대하는 이 밖에도 그가 요아스에게 두 아내를 맞게 했다고 적는다(역대하 24:3). 그는 130세에 죽었고, 하나님과 성전에 선을 행했다는 이유로 다윗 성 왕들의 묘실에 묻혔다(역대하 24:15–16).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역대하는 여호야다의 죽음을 전환점으로 그린다. 그가 죽은 뒤 요아스는 유다 방백들의 말을 듣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이를 꾸짖자 왕의 명령으로 성전 뜰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 역대하는 이를 두고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았다고 평한다(역대하 24:17–22).

여호야다 자신은 신약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마태복음 23:35와 누가복음 11:51에서 예수가 언급한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스가랴"를 많은 해석자가 이 스가랴와 같은 인물로 본다. 히브리어 성경은 역대하로 끝나므로, "아벨부터 스가랴까지"를 구약 전체의 순교자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다.

해석과 논점

  • 마태복음의 '바라갸의 아들': 마태복음 23:35는 스가랴를 "바라갸의 아들"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를 여호야다의 아들로 볼지, 선지자 스가랴(스가랴 1:1)나 다른 인물로 볼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필사 과정의 문제로 보는 견해, 여호야다에게 다른 이름이 있었다고 보는 견해 등이 함께 제시된다.
  • 두 기록의 차이: 열왕기하는 호위대의 역할을, 역대하는 레위인의 역할과 요아스의 배교를 더 강조한다. 이를 두 책의 관점 차이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 나이: 130세라는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견해와, 연대 계산과 맞추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 브나야의 아버지 여호야다(사무엘하 8:18), 예레미야 29:26에 언급된 제사장 여호야다 등은 이 여호야다와 구분해야 한다. 예레미야서의 인물이 같은 사람인지는 의견이 갈린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 설교에서 여호야다는 흔히 다음 세대를 지키고 길러 낸 신앙의 스승으로 소개된다. 그가 죽은 뒤 요아스가 무너진 이야기는 남에게 기대는 신앙이 아니라 스스로 선 신앙이 필요하다는 교훈으로 자주 쓰인다. 그가 만든 궤는 성전 헌금을 모으는 장치로서 헌금 관련 설교에 인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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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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