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인물 · 성경 인물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유다 왕 요아스 때의 제사장 가문 인물이다. 우상 숭배를 꾸짖다가 왕의 명령으로 성전 뜰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역대하 24장).
성경의 기록
스가랴의 이야기는 역대하 24장 17-25절에만 나온다. 아버지 여호야다는 제사장이다. 그는 어린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 길렀고, 뒤에 왕위에 올렸다(역대하 22-23장).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바르게 다스렸다(역대하 24:2).
여호야다가 죽은 뒤 유다의 방백(고위 관리)들이 왕에게 나아왔고, 백성은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스가랴에게 임하였다. 스가랴는 백성 앞에 서서,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버리셨다고 꾸짖었다(24:20). 무리는 왕의 명령에 따라 성전 뜰에서 그를 돌로 쳐 죽였다. 역대하는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그 아들을 죽였다고 기록한다. 스가랴는 죽으면서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하였다(24:22). 신원(伸冤)은 원통함을 풀어 준다는 뜻이다.
그 뒤 아람 군대가 유다를 쳤다. 요아스의 신하들은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 때문에 반역하여 왕을 죽였고, 요아스는 왕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였다(24:23-25). 열왕기하 12장도 요아스의 피살을 전하지만 스가랴의 죽음은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역대하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버리면 버림받는다는 주제를 분명히 드러낸다. 같은 표현이 스가랴의 말(24:20)과 아람 침공의 이유(24:24)에 되풀이된다.
신약에서 예수는 아벨의 피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임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이 세대가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마태복음 23:35, 누가복음 11:51). 성전 뜰에서 죽었다는 점과 보복을 구한 마지막 말 때문에, 많은 주석가는 이 사가랴를 여호야다의 아들로 본다.
해석과 논점
- "바라갸의 아들" 문제: 마태복음은 사가랴를 "바라갸의 아들"이라 부른다. 이 때문에 정체를 두고 견해가 갈리며, 교단보다는 주석가에 따라 차이가 난다.
- 여호야다의 아들로 보는 견해: 히브리 성경은 역대기로 끝난다. 따라서 "아벨부터 사가랴까지"는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의 의인의 죽음을 가리킨다고 본다. "바라갸"라는 이름은 필사 과정의 혼동이나 다른 이름 등으로 설명한다.
- 예언자 스가랴(스가랴 1:1, 베레갸의 아들)로 보는 견해: 다만 구약에는 그가 살해당했다는 기록이 없다.
- 그 밖의 견해: 요세푸스가 전하는, 유대 전쟁 때 성전에서 죽은 사가랴로 보기도 한다. 외경 전승을 근거로 세례 요한의 아버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용서의 기도와의 대조: 기독교 해석에서는 보복을 구한 스가랴의 말을 스데반의 기도(사도행전 7:60)와 대조하곤 한다. 히브리서 12:24의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피"와 연결하기도 한다.
- 본문 밖의 이야기: 탈무드 등 후대 유대 문헌에는 그의 피가 성전에서 끓어올랐다는 전설이 있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 없다.
- 혈연 관계: 요아스를 숨긴 여호사브앗(역대하 22:11)이 여호야다의 아내였으므로, 스가랴를 요아스의 사촌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스가랴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개역개정은 같은 히브리 이름을 구약에서는 "스가랴", 신약에서는 "사가랴"로 적는다. 그래서 같은 인물인지 헷갈리기 쉽다. 스가랴는 예언자 스가랴, 역대하 26:5의 스가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는 다른 인물로 구분된다.
설교에서는 주로 요아스 이야기의 일부로 다뤄진다. 신앙의 스승을 잃은 뒤의 변질, 은혜를 잊음, 바른 말을 하는 용기 같은 주제와 함께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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