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인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년경~215년경)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초대교회 교부이자 신학자이다.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신앙을 연결하려 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 인물로 꼽힌다.
생애
클레멘스는 2세기 중엽 그리스 문화권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테네 출생설이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확실하지 않다. 기독교로 개종한 뒤 여러 지역의 스승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판타이노스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교리문답학교에서 가르쳤다. 교리문답학교는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과 신자를 가르치던 교육 기관이다. 202년 무렵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때 박해가 일어나자 알렉산드리아를 떠났다. 그 뒤 소아시아 쪽에서 지내다 215년경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게네스가 그의 제자였다는 전승이 있으나, 학계에서는 이를 확정하지 않는다.
사역과 업적
클레멘스의 대표 저작은 세 권으로 묶어 이야기된다.
- 「권고」(프로트렙티코스): 그리스인에게 이방 종교를 버리고 그리스도에게 오라고 권하는 글이다.
- 「교사」(파이다고고스): 그리스도를 교사로 보고,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과 윤리를 다룬다.
- 「잡록」(스트로마테이스): 신앙과 철학의 관계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논한 글이다.
이 밖에 「구원받을 부자는 누구인가」가 남아 있다. 이 글은 마가복음 10:17-31의 부자 청년 이야기를 풀이하면서, 재물 자체보다 재물을 대하는 마음이 문제라고 해석했다.
클레멘스는 "율법이 유대인을 그리스도께 이끌었듯이, 철학은 그리스인을 그리스도께 이끄는 준비였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 개념을 끌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했다. 또 유대 철학자 필론처럼 성경을 상징과 비유로 읽는 풍유적 해석을 즐겨 썼다. 그는 당시 영지주의에 맞서 '참된 영지자'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참된 앎은 비밀 지식이 아니라 교회의 믿음 위에서 자라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교회에 직접 끼친 영향은 크지 않다. 다만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의 교회사·교부학 과목에서 초대교회의 대표 신학자로 다루어진다. 신앙과 학문,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평가
클레멘스는 기독교 신앙을 당시 교양인의 언어로 설명하려 한 최초의 본격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개혁주의나 복음주의 쪽 학자들은 그가 플라톤 철학을 지나치게 받아들였고 풍유적 해석이 자의적이라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와의 대화를 중시하는 쪽은 그를 복음의 문화적 소통을 시도한 선구자로 본다. 9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오스는 지금은 전하지 않는 그의 저작 일부에 이단적 견해가 있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때 서방 교회에서 성인으로 기려졌으나, 후대에 로마 순교록 개정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정교회 일부 전통에서는 여전히 그를 존경받는 교부로 기린다.
함께 보기 6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