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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기스는 예루살렘 남서쪽 유다 평지에 있던 성읍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앗수르 왕 산헤립의 유다 침공, 바벨론의 마지막 공격 기사에 나온다.

성경 본문

배경

라기스는 유다 산지와 해안 평야 사이의 낮은 구릉지대에 있었다. 개역개정은 이 지대를 '평지'로 옮겼고, 히브리어로는 '셰펠라'라 한다. 해안 길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목을 지키는 자리였기 때문에 유다 서남부의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텔 라기스(아랍어 이름 텔 엣두웨이르)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고고학 자료도 성경 밖에서 라기스의 비중을 보여 준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있던 산헤립 궁전 벽에는 라기스 포위와 함락 장면을 새긴 부조가 있었으며, 이 부조는 현재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침공은 기원전 701년의 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1930년대 발굴에서는 히브리어로 쓴 질그릇 조각 편지들이 나왔는데, 이를 '라기스 서신'이라 한다. 이 편지들은 바벨론 침공 무렵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아세가의 신호를 볼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는 흔히 예레미야 34장 7절과 함께 소개된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라기스는 유다가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먼저 공격받은 성읍이다. 열왕기하와 이사야서는 라기스에 진을 친 산헤립과 예루살렘에서 기도하는 히스기야를 대비해 그린다. 신약에는 라기스가 언급되지 않는다.

해석과 논점

  • 미가 1장 13절의 '죄의 근본': 본문은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다. "준마에 병거를 메우라"는 표현을 근거로 군사력에 기댄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이 많다. 우상 숭배가 이곳을 거쳐 퍼졌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 정복 연대: 라기스의 여러 파괴층 가운데 어느 것을 여호수아의 정복과 연결할지는 출애굽 연대를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학자마다 다르다.
  • 산헤립 부조의 의미: 산헤립이 예루살렘이 아닌 라기스 함락을 궁전에 새긴 것을 두고, 예루살렘을 함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이는 성경 본문이 직접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해석이다(열왕기하 19:35-3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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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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