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기스
성경 · 지명
라기스는 예루살렘 남서쪽 유다 평지에 있던 성읍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앗수르 왕 산헤립의 유다 침공, 바벨론의 마지막 공격 기사에 나온다.
성경 본문
- 정복 시대: 여호수아 10장에서 라기스 왕 야비아는 다른 아모리 왕 넷과 함께 기브온을 쳤다가 여호수아 (인물)에게 패했다. 이스라엘은 그 뒤 라기스를 공격해 이튿날 점령했다(여호수아 10:31-32). 라기스는 정복된 왕들의 명단(여호수아 12:11)에 들어 있고, 유다 지파의 몫으로 배정되었다(여호수아 15:39).
- 왕국 시대: 르호보암이 라기스를 요새로 삼았다(역대하 11:9). 유다 왕 아마샤는 반역을 피해 라기스로 도망했으나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다(열왕기하 14:19).
- 앗수르 침공: 앗수르 왕 산헤립이 라기스에 진을 치자 히스기야는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산헤립은 라기스에서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열왕기하 18:14-17, 이사야 36:2).
- 선지서: 미가 (인물)는 라기스를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라 불렀다(미가 1:13). 예레미야 (인물) 시대에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칠 때 라기스와 아세가가 유다의 남은 요새로 버티고 있었다(예레미야 34:7).
- 포로 귀환 뒤: 유다 자손 일부가 다시 라기스에 거주했다(느헤미야 11:30).
배경
라기스는 유다 산지와 해안 평야 사이의 낮은 구릉지대에 있었다. 개역개정은 이 지대를 '평지'로 옮겼고, 히브리어로는 '셰펠라'라 한다. 해안 길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목을 지키는 자리였기 때문에 유다 서남부의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텔 라기스(아랍어 이름 텔 엣두웨이르)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름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고고학 자료도 성경 밖에서 라기스의 비중을 보여 준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있던 산헤립 궁전 벽에는 라기스 포위와 함락 장면을 새긴 부조가 있었으며, 이 부조는 현재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침공은 기원전 701년의 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1930년대 발굴에서는 히브리어로 쓴 질그릇 조각 편지들이 나왔는데, 이를 '라기스 서신'이라 한다. 이 편지들은 바벨론 침공 무렵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아세가의 신호를 볼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는 흔히 예레미야 34장 7절과 함께 소개된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라기스는 유다가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먼저 공격받은 성읍이다. 열왕기하와 이사야서는 라기스에 진을 친 산헤립과 예루살렘에서 기도하는 히스기야를 대비해 그린다. 신약에는 라기스가 언급되지 않는다.
해석과 논점
- 미가 1장 13절의 '죄의 근본': 본문은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다. "준마에 병거를 메우라"는 표현을 근거로 군사력에 기댄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이 많다. 우상 숭배가 이곳을 거쳐 퍼졌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 정복 연대: 라기스의 여러 파괴층 가운데 어느 것을 여호수아의 정복과 연결할지는 출애굽 연대를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학자마다 다르다.
- 산헤립 부조의 의미: 산헤립이 예루살렘이 아닌 라기스 함락을 궁전에 새긴 것을 두고, 예루살렘을 함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이는 성경 본문이 직접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해석이다(열왕기하 19:35-3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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