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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량(贖良)은 값을 치르고 종이나 포로를 풀어 자유롭게 하는 일이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으로 값을 치러 사람을 죄와 죽음에서 풀어 주었다는 가르침을 가리킨다.

정의와 뜻

속량(贖良)은 본래 값을 치르고 종을 풀어 자유로운 신분이 되게 하는 일을 뜻한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값을 치렀다는 가르침을 가리킨다. 그 값으로 사람이 죄와 죽음,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났다는 것이다.

같은 뜻으로 '구속(救贖)'이라는 말도 쓴다. 남을 대신해 값을 치렀다는 점을 강조할 때는 '대속(代贖)'이라고 한다. 속량은 속죄, 구원과 함께 구원론의 중심 낱말이다.

성경적·역사적 배경

구약에서 속량은 경제·가족 제도와 이어져 있다. 가난 때문에 판 땅이나 종이 된 친족을 가까운 친척이 값을 치르고 되찾는 제도가 있었다. 이 친척을 기업 무를 자라고 부르며, 보아스가 나오미 집안의 기업을 무른 이야기(룻기 4:4-10)가 대표적인 예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출애굽도 속량으로 표현된다(출애굽기 6:6).

신약에서 예수는 자신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왔다고 말한다(마태복음 20:28). 바울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쓴다(갈라디아서 3:13).

교회사에서는 그 값을 누구에게, 어떤 의미로 치렀는지를 두고 여러 설명이 나왔다.

  • 배상설: 일부 초대 교부는 사탄에게 값을 치렀다고 보았다.
  • 만족설: 11세기 안셀무스는 손상된 하나님의 영예에 대한 보상으로 설명했다.
  • 형벌대속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가 죄인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교회에서의 실제

개역한글이 '구속'으로 옮긴 로마서 3:24, 에베소서 1:7 등을 개역개정은 '속량'으로 옮겼다. 그래서 오늘날 성경 본문에서는 주로 '속량'을 읽는다. 반면 찬송가·설교·신학 용어에서는 '구속', '구속사' 같은 말이 여전히 함께 쓰인다.

속량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교단 전통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다.

양쪽 모두 속량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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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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