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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3장 5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서 나오며,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구절이다. 은혜로 받는 구원, 세례와 중생의 관계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디도서는 바울이 그레데(크레타) 섬에서 교회를 돌보던 동역자 디도에게 보낸 편지로 전해진다. 디모데전서·디모데후서와 함께 '목회서신'이라 부른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바울을 저자로 받아들인다. 근대 이후 일부 학자는 후대에 바울의 이름으로 쓰인 글로 본다.

3장 1-2절은 교인들에게 위정자에게 순종하고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라고 권한다. 3절은 신자들도 전에는 어리석고 정욕에 매여 있었다고 돌아본다. 4절은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5절은 이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한다. 6-7절은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풍성히 부어졌고, 그 결과 신자가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이어진다. 8절에서 바울은 이 말이 "미쁘다"(믿을 만하다)고 하며 선한 일에 힘쓰라고 권한다.

해석

구절의 앞부분, 곧 구원이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긍휼(불쌍히 여기시는 자비)을 따른다는 점은 개신교 여러 교단이 은혜와 칭의를 설명할 때 공통으로 인용한다. 3-7절에 하나님, 성령,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언급되어 삼위일체의 구원 사역을 보여 주는 본문으로도 읽힌다.

해석이 갈리는 곳은 "중생의 씻음"이라는 표현이다. '중생'(重生)은 '다시 태어남, 거듭남'을 뜻한다. '씻음'으로 옮긴 그리스어 '루트론'은 '목욕' 또는 '씻는 물'을 가리킨다. '중생'으로 옮긴 '팔링게네시아'는 신약에서 이 구절과 마태복음 19:28에만 나온다.

  • 천주교·루터교·성공회의 읽기: '씻음'을 세례로 보고, 세례 안에서 성령이 실제로 거듭나게 하신다고 이해한다. 천주교 교리서는 세례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 부르는 근거로 이 구절을 든다. 루터의 소요리문답도 세례를 다루는 부분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다.
  • 개혁주의의 읽기: 세례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인정한다. 다만 거듭남을 일으키는 것은 물이 아니라 성령이며, 세례는 그 은혜를 보여 주고 확증하는 표지라고 설명한다.
  • 침례교와 여러 복음주의 교회의 읽기: '씻음'을 물세례 자체가 아니라 성령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는 내적 정결로 읽는 경우가 많다. 침례는 이미 일어난 거듭남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순종의 표로 이해한다.

논쟁과 쟁점

  • 세례와 중생의 관계: 위의 읽기 차이는 '세례가 거듭남을 이루는가, 거듭남을 나타내는가'라는 오래된 논쟁과 이어진다. 이 문제는 세례와 침례, 유아세례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 '중생'과 '새롭게 하심'의 관계: 원문에서는 전치사 하나가 두 표현을 함께 묶는다. 그래서 둘을 한 사건의 두 측면으로 볼지, 단번의 거듭남과 이어지는 갱신으로 나눌지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후자의 읽기는 성화와 연결되기도 한다.
  • 행위와의 관계: 5절은 행위를 구원의 근거에서 배제한다. 그런데 8절은 선한 일에 힘쓰라고 권한다. 여러 교단은 대체로 선행을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구원받은 삶의 열매로 설명한다.

한국 교회에서

'중생', '거듭남'은 한국 교회 설교와 신앙 교육에서 널리 쓰는 말이다. 이 구절은 구원과 거듭남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중생을 사중복음(중생·성결·신유·재림)의 첫째로 내세우는 성결교 계열에서도 중생을 다룰 때 함께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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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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