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장 20-2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고린도전서 11:20-26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이는 시장하고 어떤이는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주의 만찬에서 부자와 가난한 이가 갈라진 일을 꾸짖으며 예수의 성찬 제정 말씀을 전하는 대목이다. 거의 모든 교단의 성찬 예식에서 낭독되며, 성찬의 의미를 두고 해석이 갈리는 중심 본문이다.
문맥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교회 모임의 문제를 다루는 단락(11:17-34)의 일부다. 고린도 교인들은 함께 식사하면서 주의 만찬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부가 각자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어 "어떤이는 시장하고 어떤이는 취"하는 일이 벌어졌다. 바울은 이런 모임은 주의 만찬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하고(20절), 그 행동이 가난한 이들을 부끄럽게 한다고 꾸짖는다(22절). 이어 자신이 "주께 받은 것"을 전한다며, 예수가 잡히던 밤에 떡과 잔을 나눈 일을 들려준다(23-25절). 이 대목은 현존하는 문헌 가운데 가장 이른 성찬 제정 기록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해석
- 루터교의 읽기: "이것은 … 내 몸이니"를 말 그대로 받아들인다. 떡과 포도주 안에, 그것과 함께, 그 아래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있다고 본다(실재 임재).
- 장로교·개혁교회의 읽기: 장 칼뱅을 따른다.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임재하고, 믿는 이는 성찬에서 그리스도와 참으로 교제한다고 본다.
- 감리교의 읽기: 존 웨슬리의 전통에 따라 성찬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은혜의 수단)로 중시한다. 임재 이해는 개혁교회의 영적 임재설에 가깝다고 설명되곤 한다.
- 기념설의 읽기: 울리히 츠빙글리에게서 비롯된 이해다. "나를 기념하라"에 무게를 두고, 성찬을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며 믿음을 고백하는 예식으로 본다. 침례교와 여러 복음주의 교회가 이 이해에 가깝다.
- 공동체적 읽기: 21-22절과 이어 읽어, 성찬이 공동체 안의 빈부 차별을 허물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러 교단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대목도 있다. 26절의 "오실 때까지"는 성찬이 과거를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재림을 바라보는 예식이라는 근거로 함께 인용된다.
논쟁과 쟁점
- "이것은 내 몸이니"의 뜻은 종교개혁기 성찬 논쟁의 핵심이었다.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마르틴 루터와 츠빙글리는 이 문제에 합의하지 못했다.
- 사본 문제가 있다. 24절에서 일부 후대 사본은 "받아 먹으라"와 "너희를 위하여 찢는 내 몸"이라는 표현을 담고 있다. 개역개정을 비롯한 현대 번역은 대체로 이 표현이 없는 사본을 따른다.
- 코로나19 시기 온라인 성찬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20절의 "함께 모여서"가 언급되었다. 이 표현이 모인 회중을 전제한다고 보는 쪽과, 비상 상황에서는 달리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쪽이 갈렸다.
한국 교회에서
23-26절은 교단을 가리지 않고 성찬 예식에서 제정의 말씀으로 낭독된다. 성찬 횟수는 교회마다 다르다. 장로교·감리교 등에서는 한 해에 몇 차례나 매달 하는 교회가 많고, 대한성공회는 주일마다 성찬례를 드린다. 포도주 대신 포도즙을 쓰는 교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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