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장 16-17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고린도전서 10:16-17
16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주의 만찬의 잔과 떡을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예'하는 것이라 하고, 한 떡을 나누는 많은 사람이 한 몸이라고 말한 구절이다. 성찬의 의미와 교회의 하나 됨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인 고린도전서 8~10장에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를 다룬다. 10장 14절에서 "우상 숭배하는 데서 피하라"고 말한 뒤, 이 구절에서 주의 만찬(성찬)을 예로 든다. 성찬에 참여하는 일이 그리스도와 실제로 이어지는 일이듯, 우상 제사의 음식을 먹는 일도 가볍지 않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10장 21절의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축복의 잔"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잔이라는 뜻이다. 유대인의 유월절 식사에서 쓰인 표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예"(개역개정은 "참여")로 옮긴 그리스어 '코이노니아'는 함께 나눔, 사귐을 뜻한다.
해석
16절은 성찬에서 무엇에 참여하는지를, 17절은 성찬이 교회를 어떻게 하나로 묶는지를 말한다.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어떤 관계인지는 전통마다 달리 읽는다.
- 천주교의 읽기: 축성(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도)된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화체설을 뒷받침하는 구절 가운데 하나로 본다.
- 루터교의 읽기: 마르틴 루터를 따라, 떡과 잔은 그대로 있으면서 그 안에, 그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참으로 임재한다고 본다.
- 개혁교회의 읽기: 장로교는 장 칼뱅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라, 신자가 믿음으로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그러나 실제로 교통한다고 본다. 감리교도 존 웨슬리를 따라 성찬을 은혜의 수단으로 중시하며 대체로 이와 가까운 이해를 보인다.
- 기념설의 읽기: 울리히 츠빙글리에게서 비롯된 이해로,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분과의 사귐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예식이라고 본다. 침례교를 비롯한 여러 교회가 이 이해에 가깝다.
- 공동체적 읽기: 17절에 주목하여, 한 떡을 함께 나누는 행위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한 몸임을 드러낸다고 본다. 위의 여러 전통이 대체로 함께 받아들이는 읽기다.
논쟁과 쟁점
이 구절은 종교개혁기 성찬 논쟁에서 루터와 츠빙글리가 모두 다룬 본문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도 성찬 이해에 합의하지 못했다. 17절은 그리스어 구문상 "떡이 하나이므로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다"처럼 앞부분을 이유로 읽을 수도 있고, 개역한글처럼 두 문장을 나란히 읽을 수도 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온라인 성찬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이 구절이 언급되었다. 한자리에서 한 떡을 나누는 공동체성이 화면 너머에서도 성립하는지가 쟁점이었다.
한국 교회에서
성찬식에서 고린도전서 11장의 성찬 제정 말씀과 함께 낭독되거나,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순서에서 인용되기도 한다. "한 떡, 한 몸"이라는 표현은 교회의 하나 됨을 말하는 설교에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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