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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장 60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사도행전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 가며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용서를 구한 기도이다. 십자가 위 예수의 기도와 겹치고, 그 자리에 사울(바울)이 있었기에 원수 사랑과 순교의 본보기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세운 일곱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은 공회(유대 최고 의회) 앞에 고발되어 긴 변론을 한다(사도행전 7:2-53). 이 말에 분노한 사람들이 그를 성 밖으로 끌어내 돌로 친다. 스데반은 먼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7:59). 이어 무릎을 꿇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이 구절의 기도를 드린 뒤 숨을 거둔다. 바로 앞 절(7:58)에는 증인들이 옷을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음 장(8:1)은 사울이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다고 적는다. 스데반은 사도행전이 기록한 첫 순교자이다.

해석

  • 예수를 본받은 기도로 보는 읽기: 대부분의 주석은 이 기도가 십자가 위 예수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누가복음 23:34)와 겹친다는 점에 주목한다. 7:59의 영혼을 맡기는 기도도 누가복음 23:46과 짝을 이룬다. 그래서 같은 저자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이어서 제자가 스승의 죽음을 그대로 따랐음을 보여 준다고 읽는다.
  • 바울의 회심과 잇는 읽기: 이 기도를 뒤에 이어지는 사울의 회심과 연결하는 읽기이다. "스데반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교회는 바울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바울은 뒷날 스데반의 죽음에 찬성했던 자신을 직접 고백한다(사도행전 22:20).
  • 기독론적 읽기: 앞 절의 "주 예수여"에 이어 이 절의 "주여"도 예수를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이 해석을 따르면 죽음 앞에서 예수께 직접 기도한 이 장면은 초대교회가 예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로 다루어진다(기독론).

논쟁과 쟁점

  • "자니라"의 의미: 원문의 동사(코이마오)는 '잠들다'라는 뜻이다. 신약에서 신자의 죽음을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4절, 고린도전서 15장 20-22절). 대부분의 교단은 이를 부활의 소망을 담은 표현으로 읽는다. 그러면서 죽은 신자가 곧 주와 함께 있다고 이해하며 고린도후서 5장 8절과 빌립보서 1장 21-23절을 근거로 든다. 반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죽음을 부활 때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보는 입장을 취한다. 이 교회는 이러한 '잠' 표현을 그 근거의 하나로 든다.
  • 사본 문제와의 관계: 누가복음 23:34의 예수의 용서 기도는 일부 초기 사본에 빠져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이 원문에 있었는지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된다. 이때 사도행전 7:60의 평행이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 적용을 둘러싼 물음: 회개하지 않은 가해자를 위한 이 기도가 죄를 묻지 않는 것까지 뜻하는지가 물음으로 남는다. 또 정의를 구하는 기도(요한계시록 6:10 등)와 어떻게 함께 이해할지도 설교와 신앙 상담에서 자주 다루어진다.

한국 교회에서

이 구절은 원수 사랑과 용서, 순교를 다루는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특히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와 함께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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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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