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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메다는 에스라 6장 2절에 나오는 메대 지방의 성읍이다. 이곳 궁성에서 고레스의 성전 재건 조서가 발견되었다. 흔히 엑바타나로 알려진 고대 메대의 수도이다.

성경 본문

악메다는 에스라 6장 2절에 한 번 나오는 지명으로, 페르시아(바사) 시대 메대 지방에 있던 성읍이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라고 옮긴다.

이야기는 포로 귀환 뒤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던 때에 일어난다. 공사가 진행되자 유브라데강 서쪽 지역의 총독 닷드내 등이 공사의 근거를 따져 다리오 왕에게 글을 올렸다(에스라 5:3-17). 다리오는 바벨론의 문서 보관소를 찾아보게 했고(에스라 6:1), 악메다 궁성에서 고레스 원년의 조서가 담긴 두루마리가 나왔다. 조서의 내용은 세 가지였다(에스라 6:3-5).

  • 성전을 다시 지을 것
  • 공사 경비를 왕실에서 댈 것
  • 느부갓네살이 가져간 금은 그릇을 돌려보낼 것

다리오는 이 조서를 근거로 공사를 방해하지 말고 오히려 세금에서 비용을 대라고 명령했다(에스라 6:6-12). 성전은 다리오 왕 제6년 아달월에 완공되었다(에스라 6:15).

배경

'악메다'는 아람어 본문의 표기를 옮긴 이름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전통에서는 엑바타나(Ecbatana)로 알려져 있다. 고대 페르시아어 이름은 하그마타나(Hagmatāna)이며, 흔히 '모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에스라 4:8부터 6:18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어서, 이 지명도 아람어 본문 안에 나온다.

악메다는 원래 메대 왕국의 수도였다. 기원전 6세기 중엽 고레스가 메대를 정복하면서 페르시아의 손에 들어갔다. 그 뒤 페르시아 왕들이 수산·바벨론 등과 함께 거처로 삼은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저술가들은 왕들이 여름철에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오늘날 이란 서부의 하마단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악메다의 두루마리는 에스라 1:1-4에 나오는 고레스의 조서가 실제 왕실 문서로 남아 있었음을 보여 준다. 또 반대에 부딪혀 멈췄던 성전 재건이 마무리되는 계기가 된다.

에스라서는 성전 완공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왕들의 조서를 따라 이루어졌다고 적는다(에스라 6:14). 이방 왕의 행정 절차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섭리의 시각이 담긴 대목이다. 이 시각은 고레스를 하나님이 세운 자로 부르는 이사야 44:28, 45:1과 이어진다. 같은 시기에 백성을 독려한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 활동(에스라 5:1, 6:14)과도 함께 읽힌다.

해석과 논점

  • 두 조서의 관계: 에스라 1장의 조서는 히브리어로, 6장의 문서는 아람어로 적혀 있고 형식과 내용도 다르다. 흔히 1장은 백성에게 공포한 포고, 6장은 왕실 보관용 기록으로 설명한다. 두 문서의 관계와 역사성을 두고는 보수적 학자와 비평적 학자 사이에 견해차가 있다.
  • 고레스 원통: 이 유물에는 고레스가 정복한 지역의 신상과 주민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낸 정책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에스라서의 배경 자료로 자주 인용되지만, 유다나 예루살렘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 문서가 발견된 장소: 문서가 왜 바벨론이 아닌 악메다에서 나왔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고레스가 즉위 원년에 악메다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 정경 밖의 문헌: 엑바타나는 토빗기·유딧기·마카베오하에도 나온다. 이 책들을 천주교와 정교회는 제2경전으로 받아들이고, 개신교는 외경으로 분류한다.
  • 후대 전승: 하마단에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유적이 있다. 이는 후대의 전승이며 성경 본문에는 근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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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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