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3편 25-2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시편 73:25-26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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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3편에서 악인의 형통을 보고 흔들리던 시인이, 하늘과 땅에서 바랄 이는 하나님뿐이며 하나님이 자신의 '영원한 분깃'이라고 고백하는 대목이다. 하나님 자신을 가장 큰 복으로 고백하는 구절이어서 위로와 경건의 말씀으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시편 73편은 표제에 "아삽의 시"라고 되어 있다. 아삽은 다윗 시대에 성전 찬양을 맡은 레위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시편 제3권(73~89편)의 첫 시이다.
시인은 교만한 악인이 형통하고 평안하게 사는 모습을 부러워하다가 "거의 실족할 뻔하였다"(2절)고 털어놓는다. 실족은 발을 헛디뎌 넘어진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믿음이 흔들린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자기가 마음을 깨끗하게 지킨 일이 헛되었다고까지 생각했다(13절). 그러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인의 결국을 깨닫는다(17절). 성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룩한 곳이다.
25-26절은 이 깨달음 뒤에 나오는 고백의 절정이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며 인도하신다고 말하고(23-24절), 뒤에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28절)는 말로 시를 맺는다.
해석
- 하나님 자신이 복이라는 읽기: 시인이 처음에 부러워한 것은 재물과 평안이었다. 그러나 결론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를 가장 큰 선으로 고백한다. 많은 주석가가 이 시의 핵심을 이 전환에서 찾는다.
- '분깃'에 주목하는 읽기: '분깃'은 나누어 받는 몫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헬레크'를 옮긴 말이며, 현대어 번역에서는 '몫'으로 풀기도 한다.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레위인만 땅을 분배받지 못했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가 곧 너의 분깃"이라고 하셨다(민수기 18:20). 레위인 아삽의 시라는 점에서 이 구절을 그 말씀과 연결하는 해석이 있다.
- 쇠약함 속의 신뢰: 26절은 육체와 마음이 '쇠잔'해도, 곧 힘이 다해 약해져도 하나님은 "마음의 반석"이시라고 말한다. 그래서 질병과 노년, 죽음 앞에서 드리는 신앙고백으로 읽힌다.
- 신앙고백 전통에서의 쓰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함께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다룬다. 이 시의 후반부는 그 근거 구절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말하는 본문으로 쓰인다.
논쟁과 쟁점
이 구절의 뜻을 두고 교단 사이에 두드러진 해석 차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논의된다.
- 내세 소망을 말하는가: 24절의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에서 '영접하다'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 '라카흐'는 에녹(창세기 5:24)과 엘리야를 하나님이 데려가신 이야기에도 쓰였다. 일부 해석자는 이 점을 들어 24절과 26절의 '영원한 분깃'을 죽음 너머까지 이어지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소망으로 읽는다. 다른 해석자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시인의 영예를 회복해 주신다는 뜻으로 본다.
- 문맥을 떠난 인용: 25-26절만 떼어 읽으면 처음부터 평온했던 사람의 고백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 고백이 의심과 시기를 거친 끝에 나왔다는 점을 함께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설교자와 주석가들이 있다. 또 이 시는 형통을 복의 척도로 삼던 시인이 생각을 바꾸는 내용이어서, 번영신학을 비판하는 쪽에서 인용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에서
개역한글의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라는 표현은 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26절이 육체의 쇠약을 직접 말하기 때문에, 심방이나 장례예배·추도예배에서 위로의 말씀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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