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22-23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마태복음 1:22-23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저자가 예수의 성령 잉태를 이사야 7:14의 성취로 풀이한 해설이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는 이름과 동정녀 탄생 교리의 근거로 성탄절마다 인용되며, '처녀' 번역을 두고 논의된다.
문맥
마태복음 1장은 예수의 족보(1:1-17)에 이어 요셉의 시점에서 예수의 탄생을 전한다. 약혼한 마리아가 함께 살기 전에 임신한 것을 알고 요셉은 조용히 관계를 끊으려 한다. 그때 꿈에 주의 천사가 나타나,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일러 준다(1:20-21). 22-23절은 천사의 말 뒤에 이어지며, 대개 복음서 저자가 덧붙인 해설로 읽는다.
이 해설은 마태복음에 여러 번 나오는 '성취 인용'의 첫 사례다. 성취 인용은 구약 구절을 들어 그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밝히는 방식이다. 인용된 말씀은 이사야 7:14이며, 원래는 아람(시리아)과 북이스라엘의 위협 앞에 선 유다 왕 아하스에게 이사야가 준 징조였다. 마태는 히브리어 이름 '임마누엘'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풀어 준다.
해석
- 직접 예언으로 보는 읽기: 보수적 복음주의 해석자 다수는 이사야 7:14이 처음부터 메시아의 동정녀 탄생을 내다본 예언이며, 예수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 이중 성취·모형론의 읽기: 이사야 당시에 태어난 한 아이에게서 먼저 성취되었고, 그 일이 더 큰 성취인 예수를 미리 보여 주는 모형(그림자)이었다고 보는 견해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안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진다.
- 역사비평적 읽기: 이사야의 말은 본래 아하스 시대의 아이를 가리켰다고 본다. 마태는 칠십인역(기원전에 히브리어 구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의 표현을 빌려, 예수 사건에 비추어 이 구절을 새롭게 읽었다는 것이다.
- 유대교의 읽기: 유대교 전통은 이 구절을 아하스 시대의 징조로 읽으며, 메시아의 동정녀 탄생 예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은 대체로 이 이름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신다는 성육신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본다. 마태복음 마지막 절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와 짝을 이루어 복음서 전체를 감싼다는 해석도 많다.
논쟁과 쟁점
- '처녀'인가 '젊은 여자'인가: 이사야 7:14의 히브리어 '알마'는 혼인할 나이의 젊은 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칠십인역과 마태는 이를 '파르테노스'(처녀)로 옮겼다. 이 차이는 오래전부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논쟁점이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개정표준역(RSV)이 이사야 7:14을 '젊은 여자'로 옮기자 보수 진영이 크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수적 해석자들은 '알마'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쓰인 단어라는 점과 마태의 해석을 근거로 '처녀' 번역을 지지한다.
- 동정녀 탄생 교리: 20세기 초 미국의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에서 동정녀 탄생은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자유주의 신학의 일부는 이를 상징적 고백으로 읽고,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는 역사적 사실로 고백한다. 한국에서 예배 때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단들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를 함께 고백한다.
- 이름 문제: 아이의 이름은 '예수'인데 왜 '임마누엘'이라 했는지 묻는 이들이 있다. 해석자 대부분은 임마누엘을 실제로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칭호로 이해한다.
한국 교회에서
대림절과 성탄절 설교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대림절에는 '곧 오소서 임마누엘'이라는 찬송으로도 불린다. '임마누엘'은 교회와 기독교 기관의 이름에도 흔히 쓰인다.
함께 읽을 구절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