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투스
인물
고대 로마의 역사가이자 원로원 의원(56년경~120년경)이다. 『연대기』에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인 박해와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된 일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기독교 밖에서 나온 초기 사료로 자주 인용된다.
생애
56년 무렵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생지는 갈리아(오늘날 프랑스 일대)나 북이탈리아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 않다. 개인 이름도 푸블리우스 또는 가이우스로 전해져 정해지지 않았다.
장군 아그리콜라의 딸과 결혼한 뒤 로마 관직을 차례로 거쳤다. 88년에 법무관, 97년에 보충 집정관(임기 중 교체되어 들어선 집정관)을 지냈다. 112년 무렵에는 소아시아의 아시아 속주 총독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망 연도는 전하지 않으나 120년 전후로 본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으며, 로마 전통 종교와 원로원 계층의 시각에서 글을 썼다.
사역과 업적
주요 저술은 다음과 같다.
- 장인의 전기인 『아그리콜라』
- 게르만족의 풍습을 기록한 『게르마니아』
- 69년부터 96년까지를 다룬 『역사』
- 아우구스투스 사후부터 네로 시대까지를 다룬 『연대기』
『역사』와 『연대기』는 일부만 남아 있다. 『역사』 제5권에는 유대인에 관한 서술과 70년 티투스의 예루살렘 포위가 시작되는 부분이 실려 있다.
교회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은 『연대기』 제15권 44장이다. 64년 로마 대화재 뒤 네로가 자신에게 쏠린 소문을 잠재우려고 '크리스티아니'라 불리던 무리에게 죄를 씌웠다는 내용이다. 타키투스는 그 이름의 유래인 그리스도가 티베리우스 황제 때 본디오 빌라도에게 극형을 받았다고 적었다. 또 그리스도인들이 짐승 가죽을 쓴 채 개에게 물려 죽거나, 십자가에 달리거나, 밤에 횃불처럼 불태워졌다고 기록했다. 그는 기독교를 '해로운 미신'이라 불렀다. 그러면서도 처형이 공익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잔인함 때문이라는 동정 여론이 일었다는 점도 함께 적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교회에서 타키투스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보여 주는 기독교 밖 사료로 소개된다. 기독교 변증(신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옹호하는 일) 서적과 설교에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로마 작가 소 플리니우스·수에토니우스의 기록과 함께 인용되는 일이 많다. 초대교회가 겪은 박해를 설명할 때도 네로 박해의 대표 자료로 쓰인다. 이때 베드로와 바울이 네로 때 순교했다는 교회 전승과 함께 언급되기도 하나, 타키투스 자신은 두 사도를 언급하지 않는다.
평가
학자 다수는 『연대기』 15권 44장을 타키투스가 직접 쓴 문장으로 본다. 기독교에 적대적인 어조가 후대 그리스도인이 덧붙인 글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반면 소수 학자는 후대 삽입 가능성을 제기한다.
몇 가지 한계도 지적된다. 1961년 가이사랴에서 발견된 비문을 보면 빌라도의 실제 직함은 타키투스가 쓴 '프로쿠라토르'가 아니라 '프라이펙투스'였다. 또 타키투스가 로마 공문서를 보고 썼는지, 당시 그리스도인에 관해 떠돌던 이야기를 옮겼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기록이 예수의 처형을 독립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보는 견해와, 2세기 초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던 내용을 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함께 있다.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