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
인물
네로(37~68)는 54년부터 68년까지 다스린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이다. 64년 로마 대화재 뒤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첫 로마 황제로 알려져 있다.
생애
네로는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소(小) 아그리피나가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혼인하면서 황제의 양자가 되었다. 54년 클라우디우스가 죽자 16세의 나이로 황제에 올랐다. 즉위 초기에는 스승인 철학자 세네카와 근위대장 부루스의 보좌를 받아 비교적 안정적으로 다스린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59년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살해하게 했고, 이후 통치는 점차 사치와 폭정으로 기울었다. 68년 갈리아와 히스파니아 총독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원로원이 그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자 로마 근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으로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황제 계보가 끊겼다.
사역과 업적
교회사에서 네로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인 박해와 연결된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따르면, 64년 로마에 큰 불이 나자 네로가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돌았다. 네로는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려 이들을 잔혹하게 처형하였다. 이는 로마 당국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것으로 꼽힌다.
신약성경과도 시기가 겹친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할 때(사도행전 25:11) 황제는 네로였다. 다만 사도행전은 황제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교회 전승은 베드로와 바울이 네로 치세에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정확한 연도와 경위는 확실하지 않다. 66년에는 유대 지방에서 로마에 맞선 반란이 일어났고, 이 전쟁은 네로 사후인 70년 예루살렘 함락으로 이어졌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교회의 설교와 주일학교 교재에서 네로는 초대교회가 겪은 박해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된다. 네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소설 『쿠오 바디스』와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국내에 널리 소개되었다.
요한계시록 해석에서는 견해가 갈린다. 요한계시록 13:18의 '짐승의 수' 666을 두고, 과거주의 해석을 따르는 학자들은 '네로 황제'를 히브리어로 적어 글자의 숫자 값을 더하면 666이 된다는 점을 근거로 네로를 가리킨다고 본다. 반면 세대주의를 비롯한 미래주의 해석은 이 짐승을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로 본다. 한국 교회에서는 미래주의 해석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어느 해석을 택하느냐에 따라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을 읽는 방식도 달라진다.
평가
고대 역사가 타키투스, 수에토니우스, 카시우스 디오는 대체로 네로를 폭군으로 그렸다. 이 시각은 교회 전통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로마가 불탈 때 악기를 연주했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덧붙은 전설로 보는 견해가 많다. 타키투스도 네로가 화재 당시 로마 밖 안티움에 있었다고 적었다. 일부 현대 학자는 원로원 계층이 남긴 기록이 네로에게 지나치게 적대적이라고 지적한다. 또 평민 사이에서는 그가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고 본다. 실제로 그가 죽은 뒤 '살아 돌아온 네로'를 자처하는 사람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박해의 규모와 성격에 대해서도 타키투스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두고 학계의 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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