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2장 10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스가랴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의 영을 부어 그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고 애통하게 하리라는 예언이다. 신약이 예수의 십자가와 재림에 연결해 인용하여 메시아 예언으로 자주 논의된다.
문맥
스가랴 12~14장은 "경고"(히브리어 '맛사', 무거운 말)로 시작하는 후반부 예언 단락이다. 12장 앞부분은 열방이 예루살렘을 치러 모이지만 여호와가 그 성을 지킨다는 외적 구원을 말한다. 10절에서는 백성 안의 변화로 초점이 옮겨 간다. 말하는 이는 하나님("내가")이다. 하나님은 왕가인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준다. 그 결과 백성은 자신들이 찌른 이를 보며 외아들이나 맏아들을 잃은 듯 깊이 애통한다. 이어 11절은 이 애통을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의 애통에 견주는데, 이를 므깃도에서 전사한 요시야 왕에 대한 애도와 연결하는 해석이 많다. 12~14절은 집안마다 따로 우는 모습을, 13장 1절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는 장면을 그린다.
해석
- 신약과 전통 기독교의 읽기: 요한복음은 예수의 옆구리가 창에 찔린 일을 이 구절의 성취로 인용하고(요한복음 19:37), 요한계시록은 그를 찌른 자들도 그를 보리라는 재림의 장면에 이 구절을 가져온다(요한계시록 1:7). 이 때문에 교부와 종교개혁자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 해석자가 이 구절을 십자가를 가리킨 메시아 예언으로 읽어 왔다.
- 세대주의의 읽기: 세대주의는 이 구절이 장차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이스라엘 민족이 집단으로 회개하고 메시아를 알아보는 일을 예언한다고 본다.
- 개혁주의·언약신학의 읽기: 언약신학 쪽 해석자들은 오순절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회개한 유대인들(사도행전 2:37)처럼 복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회개에서 성취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이 장래에 대규모로 회심하리라고 볼지는 이 진영 안에서도 견해가 갈린다.
- 유대교 전통의 읽기: 바빌로니아 탈무드(수카 52a)에는 이 애통의 대상을 죽임당한 '요셉의 아들 메시아'로 보는 견해와 '악한 충동'으로 보는 견해가 함께 실려 있다.
- 역사비평 학계의 읽기: 일부 학자는 찔린 이를 당시 공동체가 죽인 이름 모를 의인이나 지도자로 본다. 또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과 비교하기도 한다.
논쟁과 쟁점
- "나를"인가 "그를"인가: 표준 히브리어 본문(마소라 본문)은 "그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라고 읽은 뒤 "그를 위하여 애통하리라"로 인칭이 바뀐다. 기독교 해석자 가운데에는 하나님 자신이 찔린 이와 동일시된다는 점을 성자의 신성과 연결하는 이들이 있다. 반면 하나님을 거역한 일을 비유적으로 '찌름'이라 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일부 사본과 후대 번역은 "그를"로 읽는다. 개역한글은 "그 찌른바 그를"로 옮겨 이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 칠십인역의 차이: 그리스어 구약인 칠십인역은 '찌르다' 대신 '조롱하다'에 가까운 말로 옮겼다. 이는 비슷한 모양의 히브리어 동사를 혼동한 결과로 추정된다. 요한복음의 인용은 히브리어 본문 쪽에 가깝다.
- "심령"의 뜻: 하나님이 부어 주는 '루아흐'를 성령으로 볼지, 은혜를 구하는 마음의 상태로 볼지에 대해 번역자와 주석가의 판단이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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