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 23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박하·회향·근채 같은 작은 채소의 십일조까지 지키면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린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꾸짖은 말씀이다. 율법의 경중을 가리는 구절이면서, 한국 교회에서 십일조 논의에 자주 인용된다.
문맥
마태복음 23장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간 뒤 성전에서 가르치던 때의 말씀이다. 예수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서기관(율법 학자)과 바리새인(율법을 엄격히 지키던 유대교 분파)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는 여러 차례의 탄식과 책망을 쏟아 내는데, 이 구절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외식"은 겉으로 꾸민 위선을 뜻한다. 박하·회향·근채는 양념이나 약초로 쓰던 작은 식물이다. 율법은 땅의 소산의 십분의 일을 바치라고 하는데(레위기 27:30, 신명기 14:22),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이런 작은 식물에까지 적용했다. 바로 뒤의 24절은 이런 태도를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것에 빗댄다. 누가복음 11:42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해석
- 율법의 경중을 가리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구절의 초점을 "율법의 더 중한 바"에 둔다. 사소한 규정을 꼼꼼히 지키는 일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율법의 중심을 대신한 태도가 책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는 작은 계명을 없애라는 뜻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바로잡으라는 뜻으로 읽힌다.
- 예언서 전통과 잇는 읽기: 정의·긍휼·믿음을 앞세우는 말은 미가 6장 6-8절과 호세아 6:6의 흐름을 잇는다고 본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호세아 6:6을 두 번 인용한다(마태복음 9장 13절, 마태복음 12장 7절).
- 십일조의 근거로 보는 읽기: 예수가 십일조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으므로 십일조가 신약 시대에도 이어지는 신앙의 의무라는 근거가 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 언약의 시대를 구분하는 읽기: 이 말은 십자가 이전에 율법 아래 있던 유대인에게 한 말이므로 신약 교회의 헌금 규정을 직접 정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그리스도인의 헌금을 자원하는 마음과 같은 다른 원리(고린도후서 9:7 등)로 설명한다.
논쟁과 쟁점
이 구절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십일조 논쟁이다. 십일조를 교인의 의무로 가르치는 쪽은 "이것도 행하고"를 예수가 십일조를 직접 인정한 말로 본다. 의무화에 비판적인 쪽은 이 구절의 강조점이 십일조가 아니라 정의와 긍휼과 믿음에 있다고 반론한다. 이들은 십일조를 앞세우는 인용이 오히려 구절의 취지를 뒤집는다고 지적한다. 교단 안에서도 목회자와 신학자에 따라 견해가 갈린다.
번역에서는 개역한글의 "의와 인과 신"을 개역개정이 "정의와 긍휼과 믿음"으로 옮겼다. 셋째 단어인 헬라어 '피스티스'는 '믿음'과 '신실함'이라는 뜻을 함께 가진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신실함으로 풀거나 '신의'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가르치는 설교에서 말라기 3장 8-10절과 함께 이 구절이 자주 인용된다. 위선과 형식적 신앙을 경계하는 설교에서도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비유와 함께 자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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