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바임
성경 · 무리·민족
르바임은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이전 요단 동편과 가나안에 살았다고 전하는 키 큰 옛 족속을 가리킨다. 시가서와 예언서에서는 같은 낱말이 죽은 자의 영을 뜻하기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곳
르바임은 창세기 14:5에 처음 나온다. 이 구절에서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왕들이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이들을 쳤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에서 "르바 족속"으로 옮겼다. 창세기 15:20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땅에 사는 족속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
신명기 2장은 모압 땅과 암몬 땅에 예전에 살던 큰 족속을 설명한다.
- 신명기 2:10-11은 그들이 아낙 자손처럼 키가 컸고 르바임으로 여겨졌으며, 모압 사람은 그들을 "에밈"이라 불렀다고 적는다.
- 신명기 2:20은 암몬 사람이 그들을 "삼숨밈"이라 불렀다고 적는다.
신명기 3:11은 바산 왕 옥이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였다고 전한다. 그의 철 침상은 길이 아홉 규빗, 너비 네 규빗이었다고 한다. 3:13은 바산 땅을 "르바임의 땅"이라 부른다. 여호수아 12:4와 13:12도 옥을 르바임의 남은 자로 소개한다.
예루살렘 서남쪽의 "르바임 골짜기"는 여러 곳에 나온다(여호수아 15:8, 사무엘하 5:18). 다윗 시대에 블레셋 사람이 이 골짜기에 진을 쳤다. 사무엘하 21:16-22와 역대상 20:4-8에는 블레셋의 "거인족"의 자손들이 나온다. 이 "거인족"의 히브리어가 르바임과 같은 어근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갈린다.
낱말의 두 가지 쓰임
르바임은 족속 이름 외에 죽은 자의 영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이런 쓰임은 이사야 14:9, 26:14, 19, 시편 88:10, 잠언 9:18, 욥기 26:5 등에 나온다. 우리말 성경은 이런 곳을 대개 "죽은 자", "유령" 등으로 옮겼다. 그래서 개역개정 독자는 이 낱말이 같은 원어라는 것을 알아보기 어렵다.
낱말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고치다"라는 뜻의 어근에서 왔다는 견해와 "약하다, 늘어지다"라는 뜻의 어근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다. 고대 시리아 해안의 우가릿 문헌에는 비슷한 낱말(rpum)이 죽은 조상이나 영웅의 영을 가리키는 말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이를 성경의 두 가지 쓰임을 설명하는 실마리로 본다. 칠십인역은 족속 이름으로 쓰인 르바임을 여러 곳에서 "거인"으로 옮겼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신명기는 르바임과 아낙 자손 같은 거인 족속을 함께 언급한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두려워한 상대도 하나님 앞에서는 쫓겨났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서술은 열두 정탐꾼의 불신앙(민수기 13:33)과 대비된다. 다윗과 그 신하들이 블레셋 거인들을 이긴 이야기도 같은 흐름에서 읽힌다(→ 다윗과 골리앗).
신약성경은 르바임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자를 뜻하는 쓰임이 있다. 이사야 26:14는 르바임이 "다시 살지 못한다"고 말하고, 26:19는 죽은 자의 소생을 노래한다. 이 대목은 구약의 부활 신앙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해석과 논점
- 족속과 죽은 자의 관계: 한 낱말이 실제 족속과 죽은 자의 영을 함께 가리키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옛 영웅 족속이 죽은 뒤 저승의 존재로 기억되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학계의 정설은 없다.
- 옥의 침상: 철 침상을 실제 침대로 보는 해석이 있다. 현무암 석관이나 바산 지역의 고인돌 같은 무덤 구조물로 보는 해석도 있다.
- 네피림과의 연결: 민수기 13:33은 아낙 자손을 네피림의 후손으로 표현한다. 이 구절 때문에 르바임을 창세기 6:4의 네피림과 연결하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르바임이 천사와 사람 사이에서 난 혈통이라거나 오늘날까지 그 후손이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성경 본문이 말하지 않는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는 후대의 추측이나 대중적 주장으로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 역사성: 보수적 해석은 르바임을 실제로 존재했던 옛 족속으로 본다. 비평적 학자들 가운데에는 신명기 2장의 설명이 오래된 전승을 정리한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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