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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테아는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기원후 106년까지 요르단 남부와 아라비아 북서부에 있었던 아랍계 민족의 왕국이다. 수도는 페트라였으며, 신약에는 이 왕국의 왕 아레다가 등장한다.

배경

나바테아인은 본래 아라비아 북부에서 유목하던 아랍계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옛 에돔 땅인 지금의 요르단 남부에 정착했는데, 에돔 사람들이 유다 남부로 옮겨 간 뒤 그 지역을 차지했다는 견해가 많다. 다만 정확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유다 남부로 옮겨 간 에돔 사람들의 땅은 훗날 '이두매'라고 불렸다.

나바테아인은 대상(낙타로 짐을 나르는 무역단)이 다니는 교역로를 장악해 부를 쌓았다. 이 길로 아라비아 남부에서 나는 유향(향료로 쓰는 나무 진)과 몰약 같은 향료가 지중해 쪽으로 운반되었다. 이들은 바위를 깎아 만든 도시 페트라를 중심지로 삼았다.

전개

  • 기원전 312년경: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 가운데 하나인 안티고노스 1세가 나바테아인을 공격했다. 이것이 나바테아인이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 기원전 2세기: 왕국의 모습을 갖추었다. 개신교 정경에 들지 않는 외경인 마카베오하 5장 8절에는 '아라비아인의 군주 아레다'가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를 나바테아의 아레타스 1세로 본다.
  • 기원전 1세기 전반: 아레타스 3세 때 다메섹까지 세력을 넓혔다. 유대 하스몬 왕조의 왕위 다툼에도 개입했다. 그러나 로마가 이 지역에 진출한 뒤에는 로마의 종속국이 되었다.
  • 기원전 9년~기원후 40년: 아레타스 4세 때 전성기를 맞았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아레타스 4세의 딸은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와 혼인했다. 그런데 안디바가 헤로디아와 결혼하려고 그녀를 내보냈고, 이 일 등이 원인이 되어 두 나라가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안디바가 크게 졌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32절에서 다메섹에 있던 '아레다 왕의 고관'이 자기를 잡으려 했다고 적었는데, 여기의 아레다가 바로 아레타스 4세다.
  • 기원후 106년: 마지막 왕 라벨 2세가 죽은 뒤,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이 왕국을 합병해 '아라비아 페트라이아' 속주로 삼았다.

결과와 영향

로마에 합병된 뒤 교역로가 바뀌면서 페트라는 점차 쇠퇴했다. 그 뒤 이 지역에도 기독교가 전해졌으며, 비잔틴 시대에 페트라에 세워진 교회 터가 발굴되었다. 나바테아인이 쓰던 문자는 오늘날 아랍 문자의 직접적인 기원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페트라 유적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평가

나바테아는 신약 시대의 정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다. 헤롯 가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요세푸스가 기록을 남겼다. 그는 헤롯 대왕의 어머니가 나바테아 귀족 집안 출신이라고 전한다. 또한 그는 안디바와 아레타스 4세의 전쟁을 세례 요한의 처형과 관련지어 서술했다.

바울과 관련된 대목은 성경 연구자들이 자주 다룬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회심 직후 갔다고 한 '아라비아'를 나바테아 영역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아레타스 4세가 기원후 40년 무렵 죽었으므로, 고린도후서 11장 32절은 바울의 회심 연대를 추정하는 근거로도 쓰인다. 다만 당시 다메섹이 실제로 나바테아의 지배 아래 있었는지, 아니면 '고관'이 그곳 나바테아인 공동체의 대표였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이사야 60장 7절의 '느바욧'을 나바테아와 연결하는 견해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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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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