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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설교

성경 · 사건

평지설교는 누가복음 6장 17~49절에서 예수가 열두 제자를 세운 뒤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서서 제자들과 무리에게 한 가르침이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내용이 많이 겹친다.

본문과 내용

누가복음 6장에 나온다. 예수는 산에서 밤새 기도한 뒤 열두 제자를 택하고(6:12-16), 그들과 함께 내려와 "평지에" 선다(6:17). 그곳에는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 두로와 시돈 해안에서 온 무리가 모여 있었다. 예수는 병자를 고친 뒤 제자들을 바라보며 가르친다(6:20). 가르침은 다음 순서로 이어진다.

  • 복과 화의 선언(6:20-26):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미움받는 자에게 복을 말하고,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받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를 말한다.
  • 원수 사랑(6:27-36): 원수를 사랑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6:31)는 황금률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6:36)가 이 부분에 있다.
  • 비판하지 말라(6:37-42): 형제의 눈 속 티와 자기 눈 속 들보를 비유로 든다.
  • 나무와 열매(6:43-45):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 사람의 말과 행실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한다.
  • 반석 위에 지은 집(6:46-49): 듣고 행하는 사람과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을 견주며 가르침을 맺는다.

설교가 끝난 뒤 예수는 가버나움으로 들어간다(7:1).

배경과 낱말

"평지"는 그리스어 '토포스 페디노스'(평평한 곳)를 옮긴 말이다. 본문은 장소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복이 있나니"는 '마카리오이'(복되다), "화 있을진저"는 '우아이'(슬픔과 경고를 나타내는 탄식)를 옮긴 말이다.

산상수훈과의 관계

평지설교는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과 내용과 순서가 많이 겹친다. 다만 분량이 훨씬 짧고, 복의 선언이 넷이며 이와 짝을 이루는 화의 선언이 넷 붙어 있다. 두 본문의 관계는 크게 세 가지로 설명된다.

  • 같은 설교를 두 복음서가 달리 전했다고 보는 견해. 이 견해에서는 '평지'를 산 중턱의 평평한 곳으로 이해해 두 장소를 조화시키기도 한다.
  • 예수가 비슷한 가르침을 여러 곳에서 되풀이했다고 보는 견해.
  • 두 복음서 기자가 공통 자료를 저마다 편집했다고 보는 견해. 이 견해는 공관복음 문제의 논의와 맞닿아 있다.

해석과 논점

  • 가난한 자: 누가복음 6장 20절은 마태복음 5:3과 달리 "심령이"라는 말 없이 "너희 가난한 자"라고만 한다. 많은 해석자는 두 본문을 함께 읽어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 가난과 실제 가난을 함께 담은 말로 이해한다. 반면 누가복음이 실제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두드러지게 보여 준다는 점에 무게를 두는 해석도 있다. 해방신학처럼 이 본문을 사회적·경제적 의미 중심으로 읽는 흐름도 있다. 흔히 누가복음 본문을 인용하면서 마태복음의 표현을 섞어 말하기도 하는데, 두 본문의 문구는 구별해야 한다.
  • 원수 사랑과 비폭력: 재세례파 전통의 교회들은 원수 사랑의 가르침을 폭력과 무력을 쓰지 않는 삶의 근거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많은 개신교 교단은 이를 개인 윤리의 원칙으로 받되, 국가의 공권력 행사와는 구분해서 본다.
  • 듣는 대상: 본문은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고 하면서도 무리가 함께 들었다고 적는다. 이 때문에 평지설교를 제자의 윤리로 읽는 해석과, 모든 사람을 향한 초청으로 읽는 해석이 함께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이 본문을 따로 다루기보다 산상수훈과 팔복을 설교할 때 함께 다루는 경우가 많다. 교회력에 따라 읽을 본문을 정해 둔 개정공동성서정과(Revised Common Lectionary)는 다해(C년) 주현절 뒤 주일들에 이 본문을 나누어 배정한다. 이 성서정과를 따르는 교회에서는 해당 주일에 이 본문으로 설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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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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