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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35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신성모독 혐의에 맞서 시편 82편 6절을 인용하며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고 말한 구절이다. 성경의 권위를 말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며, '신'이라 불린 이들이 누구인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문맥

요한복음 10장 후반부의 일이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성전 봉헌을 기념하는 겨울 절기)이 이르자 예수가 성전의 솔로몬 행각을 거닐었고,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하라"고 다그쳤다(요한복음 10:22-24). 예수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30절)라고 답하자 그들은 돌을 들었다. 그 이유로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이라 한다는 참람(신성모독)을 내세웠다(33절).

예수는 이에 답하면서 34절에서 시편 82편 6절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를 "너희 율법"의 말씀으로 인용한다. 35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도 신이라 불렸고 성경은 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어 36절에서 아버지가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 보낸 자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고 되묻는다. 시편을 "율법"이라 부른 것은 구약 전체를 율법이라 부르던 당시의 용례로 이해된다.

해석

해석의 초점은 둘이다. 하나는 "신"이라 불린 이들이 누구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라는 말이 논증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이다.

  • 재판관으로 보는 읽기: 시편 82편의 "신들"을 하나님을 대신해 재판하던 이스라엘의 재판관과 통치자로 본다.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았기 때문에 신이라는 칭호가 붙었다는 것이다. 장 칼뱅을 비롯한 개신교 주석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다.
  • 시내산의 이스라엘로 보는 읽기: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고 본다. 랍비 문헌에 이런 해석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지하는 쪽은 이 읽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표현과 잘 맞는다고 본다.
  • 천상 회의로 보는 읽기: 현대 구약학의 일부는 시편 82편이 본래 하나님의 천상 회의에 속한 존재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 경우 요한복음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과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과제로 남는다.
  • 논증 방식: 어느 읽기를 따르든 대다수 주석은 이 구절을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는 논법으로 이해한다. 성경이 사람에게도 '신'이라는 칭호를 썼다면, 아버지가 보낸 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참람이라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 참람 혐의가 성경에 비추어 성립하지 않음을 보이는 말로 읽는다.

논쟁과 쟁점

  • 성경 권위의 근거로서: "폐하지 못하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풀다, 깨뜨리다, 무효로 하다'라는 뜻의 동사다. 요한복음 5:18에서 안식일을 "범한다"고 할 때도 같은 동사가 쓰인다.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은 예수가 시편의 한 낱말("신")에까지 구속력을 인정한 예로 보고, 이 구절을 성경 무오설의 근거로 든다. 반면 일부 학자는 이 말이 상대가 인정하는 성경에 기댄 논증의 일부이므로 여기서 성경론 전체를 끌어내기는 어렵다고 본다. 무오설을 지지하는 쪽은 이 말이 예수 자신의 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 신화(神化) 교리와의 연결: 정교회 전통에서는 교부들 가운데 일부가 이 구절과 시편 82편을 신화(테오시스)와 연결해 읽었다. 신화는 사람이 본성상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한다는 가르침이다.
  • 사람이 신이 된다는 주장: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승영 교리, 곧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높여질 수 있다는 가르침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이 본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다수 개신교 교단은 이를 문맥을 떠난 인용으로 본다. 그 근거로 시편 82편 7절이 그 '신들'에게 "범인같이 죽으며"라고 말한다는 점을 든다.

한국 교회에서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라는 부분은 앞뒤 문맥과 떼어 단독으로 인용되는 일이 많다. 주로 성경의 권위와 불변성을 강조하는 설교와 교리 교육에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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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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