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닥사스다
인물 · 성경 인물
아닥사스다는 바사(페르시아)의 왕으로,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율법 회복과 성벽 재건을 허락한 인물이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나온다.
성경의 기록
아닥사스다는 바사(페르시아)의 왕이다. 이 이름은 페르시아 왕 이름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옮긴 것이다. 성경에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나온다.
- 성벽 공사 중지: 에스라 4:7-23에 따르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 등이 예루살렘 성읍과 성벽을 다시 쌓는 일을 고발하는 글을 왕에게 올렸다. 왕은 옛 기록을 살펴본 뒤 공사를 그치게 했다.
- 에스라 파송: 에스라 7장에서 왕은 즉위 제칠년에 학자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낸다. 이때 내린 조서(왕의 명령문)는 성전 제사에 쓸 은금과 물품을 주고, 성전 일꾼의 세금을 면제하며, 에스라에게 재판관을 세우고 율법을 가르칠 권한을 준다(에스라 7:11-26).
- 느헤미야 파송: 즉위 제이십년에 왕은 술 맡은 관원 느헤미야의 근심 어린 얼굴을 보고 사정을 묻는다. 느헤미야가 묵도(소리 없이 드리는 짧은 기도)를 한 뒤 청하자, 왕은 성벽 재건을 허락하고 총독들에게 보낼 조서와 목재를 내준다(느헤미야 2:1-8). 느헤미야는 왕의 제삼십이년까지 유다 총독으로 일한 뒤 왕에게 돌아갔다(느헤미야 5:14, 13:6).
성경 안에서의 의미
본문은 아닥사스다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쓰인 이방 왕으로 그린다. 에스라는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왕의 마음에 두신 하나님을 송축하고(에스라 7:27), 느헤미야는 왕이 허락한 까닭을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느헤미야 2:8). 같은 왕이 한때는 공사를 막고 뒤에는 허락했다. 이 기록은 포로 귀환 이후의 유다 공동체가 제국의 정책에 기대어 살아야 했던 형편을 보여 준다. 에스라 6:14는 성전 재건과 관련해 고레스, 다리오와 함께 그의 이름을 든다. 신약성경에는 아닥사스다가 언급되지 않는다.
해석과 논점
- 어느 왕인가: 역사에는 같은 이름의 페르시아 왕이 여럿 있었다. 느헤미야의 왕은 대체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로 본다. 에스라의 왕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뉜다. 1세로 보는 견해가 있고, 2세로 보아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뒤에 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보수적인 주석은 대체로 1세로 본다.
- 에스라 4장의 순서: 고발 사건은 고레스와 다리오 시대의 성전 재건 이야기 사이에 놓여 있다. 많은 주석은 이 대목을, 반대가 계속되었음을 보여 주려고 후대의 일을 모아 넣은 부분으로 읽는다.
- 다니엘의 칠십 이레: 다니엘 9:25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을 아닥사스다의 명령으로 보고, 이를 기점으로 예언의 연대를 계산하는 해석이 있다. 기점은 에스라 7장으로 잡기도 하고 느헤미야 2장으로 잡기도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에스라 7장의 조서를 기원전 457년으로 보고, 다니엘 8:14의 2300주야를 계산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다른 교단의 학자들은 기점을 달리 잡거나, 이런 연대 계산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 아하수에로와의 관계: 칠십인역의 에스더서와 요세푸스는 에스더의 왕을 아르타크세르크세스로 적었다. 오늘날에는 대체로 아하수에로를 크세르크세스 1세로, 아닥사스다 1세를 그 아들로 본다. 에스더를 아닥사스다와 직접 잇는 이야기는 본문에 근거가 없는 추정이다. 느헤미야 2:6에 나오는 왕후의 이름도 본문은 밝히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아닥사스다는 주로 느헤미야를 다루는 설교에 함께 등장한다. 느헤미야가 왕 앞에서 짧게 기도한 뒤 말한 장면(느헤미야 2:4)은 일상 속 기도의 본보기로 자주 소개된다. 이방 왕이 재건을 허락한 일은 왕의 마음이 하나님 손에 있다는 잠언 21:1과 함께 설명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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