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브라와 부아
인물 · 성경 인물
십브라와 부아는 출애굽기 1장에 나오는 두 산파(아이를 받는 여인)이다. 히브리 남자아이를 죽이라는 애굽 왕의 명령을 하나님을 경외하여 따르지 않았다.
성경의 기록
십브라와 부아는 출애굽기 1:15-21에 나오는 두 산파이다. 산파는 해산을 돕는 여인을 말한다.
요셉이 죽은 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크게 번성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이들에게 고된 노역을 시켜 억눌렀다(출애굽기 1:8-14). 그래도 백성이 계속 늘어나자 애굽 왕 바로는 두 산파를 불렀다. 그리고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도울 때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 두라고 명령했다(출애굽기 1:16).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살렸다(출애굽기 1:17). 왕이 까닭을 묻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달리 건장하여 산파가 이르기 전에 이미 해산한다는 것이었다(출애굽기 1:19).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은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백성은 더욱 번성했다. 또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했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다(출애굽기 1:20-21).
그 뒤 바로는 온 백성에게 히브리 남자아이를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했다(출애굽기 1:22). 바로 이어 요게벳이 모세를 낳아 숨기는 이야기가 나온다(출애굽기 2장).
성경 안에서의 의미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을 억압한 애굽 왕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다. 반면 힘없는 두 여인은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이 대비가 자주 지적된다. 두 산파의 행동은 모세가 태어나 살아남는 출애굽 이야기의 서막에 해당한다.
신약성경은 십브라와 부아를 이름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관련된 기록은 있다.
해석과 논점
- 히브리인인가, 애굽인인가: 히브리어 원문은 "히브리 산파"로도, "히브리 여인들의 산파"로도 읽을 수 있다. 두 이름이 셈어 계통이어서 히브리 여인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처럼 애굽 여인으로 이해한 고대 해석도 있다.
- 두 사람뿐이었나: 큰 무리의 해산을 두 사람이 모두 도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들을 산파들의 대표나 책임자로 보는 견해가 있다.
- 거짓말의 문제: 왕에게 한 대답이 사실이었는지, 사실이 아니었다면 정당한지는 오래된 윤리 논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거짓말 자체는 잘못이지만 하나님이 상을 주신 것은 그들의 자비와 경외 때문이라고 보았다. 장 칼뱅도 그들의 대답에 허물이 없지 않으나, 하나님이 그 경건을 보시고 복을 주셨다고 풀이했다. 반면 생명을 지키려고 불의한 권력을 속인 것은 정당했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이 논의는 라합의 경우와 함께 다뤄지곤 한다.
- 불의한 명령의 거부: 이 사건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국가 권력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예로 자주 인용된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행전 5장 29절)와 나란히 읽히기도 한다.
- 본문 밖의 전승: 유대교 랍비 전승(탈무드)에는 십브라를 요게벳으로, 부아를 미리암으로 보는 이야기가 있다. 같은 전승은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다"는 구절을 제사장 가문과 왕의 가문이 그들에게서 나왔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이는 성경 본문에 없는 후대의 해석이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십브라와 부아는 주로 두 자리에서 소개된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주제로 한 설교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의 출생을 다루는 교회학교 공과이다. 흔히 두 가지 교훈으로 풀이된다.
-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세상 권력에 대한 두려움보다 앞선다.
- 이름 없는 작은 자의 신실함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인다.
생명 존중이나 낙태 문제를 다루는 설교와 글에서 인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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