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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장 21-23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빌립보서 1:21-23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갇힌 몸으로 삶과 죽음 사이의 갈등을 고백한 구절이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생사관을 대표하며, 죽음 직후 신자의 상태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문맥

빌립보서는 바울이 갇힌 몸으로(빌립보서 1:13)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된 대로 바울이 세운 교회이며, 갇힌 바울에게 헌금을 보내 도왔다(빌립보서 4:10-18). 바울이 갇혀 있던 곳은 전통적으로 로마로 본다. 에베소나 가이사랴로 보는 학자도 있다.

1장 12-26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갇힌 일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어 재판 결과에 따라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처지를 돌아본다. 21절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20절에 이어지는 고백이다. 22-23절에서 바울은 살아서 일의 열매를 맺는 것과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 사이에서 망설인다. 24-26절에서는 교인들을 위해 남아 있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해석

  •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 읽기: 교단을 가리지 않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읽기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삶의 목적과 내용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으로 본다. 죽음이 "유익"한 까닭은 죽음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 가까이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죽음 직후의 상태에 대한 근거로 읽기: 장로교·감리교 등 개신교 다수 전통은 23절을 근거로, 신자가 죽으면 부활 이전에도 곧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고 본다. 신학에서는 죽음과 부활 사이의 상태를 '중간 상태'라 부른다. 이 구절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의인의 영혼이 죽은 뒤 곧 하늘로 받아들여진다고 고백할 때 근거로 드는 구절 가운데 하나다.
  • 부활과 재림에 초점을 둔 읽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죽은 사람이 부활 때까지 의식 없이 잠든 상태에 있다고 가르친다. 이 교회는 바울이 이 구절에서 죽음과 부활 사이의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고 읽는다. 죽은 이에게는 숨을 거둔 뒤 처음 의식하는 순간이 곧 재림 때의 부활이므로, 바울이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논쟁과 쟁점

  • 중간 상태: 위의 차이는 영혼과 몸, 부활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이어져 있다. 다수 교단은 고린도후서 5:8 등을 함께 들어 신자가 죽은 뒤 곧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재림교회는 죽음을 '잠'으로 표현한 구절들을 근거로 든다.
  • 번역: 22절은 그리스어 문장 구조가 매끄럽지 않아 어디서 끊어 읽느냐에 따라 번역이 조금씩 갈린다. 23절의 "떠나다"(그리스어 '아날뤼오')는 배의 밧줄을 풀거나 천막을 걷는 데도 쓰이던 말로 풀이된다. 개역한글의 "욕망"은 여기서 나쁜 뜻이 아니라 간절한 바람을 가리킨다.
  • 문맥을 떠난 인용: 21절과 23절만 떼어 내면 죽음을 바라는 말로 읽힐 수 있다. 이에 대해 주석가들은 바울이 결국 살아서 교인들을 섬기는 쪽을 택한다는 점(24-25절)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교회에서

21절은 장례예배와 추도예배에서 자주 읽힌다. 그리스도인의 생사관을 짧게 담은 구절로 설교와 간증에도 흔히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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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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