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20-22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고린도전서 15:20-22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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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부활을 부정하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다시 살아났다고 선언하고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한 구절이다. 부활 신앙, 원죄 교리, "모든 사람"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이고, 15장 전체가 부활을 다룬다. 고린도 교회에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린도전서 15:12)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은 12~19절에서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살아나지 못했고 믿음도 헛되다는 가정을 차례로 따진다. 20절의 "그러나 이제"는 이 가정을 뒤집고, 그리스도가 실제로 살아났다는 선언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다. 이어지는 23절 이하는 부활의 순서와 마지막 때를 다룬다.
"잠자는 자"는 죽은 신자를 부드럽게 이르는 표현이다. "첫 열매"(그리스어 아파르케)는 추수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바치던 구약의 규례(레위기 23:10-11)에서 온 말이다. 첫 열매가 뒤따를 추수를 미리 보여 주듯,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자들의 부활을 앞서 보여 주고 보증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21~22절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맞세우며, 같은 대비가 로마서 5장에도 나온다.
해석
- 대다수 개신교의 읽기: 22절 뒤쪽의 "모든 사람"을 23절의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와 같은 뜻으로 보아,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아담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죽음 아래 있듯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부활 생명을 얻는다는 대비로 읽는다.
- 원죄 교리와 연결하는 읽기: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은 타락과 원죄(아담의 죄가 온 인류에게 미친 영향) 교리를 설명할 때 근거 구절로 쓰인다. 개혁주의 전통은 아담을 인류의 대표로 세운 언약신학의 틀로 이를 설명한다. 웨슬리 신학 전통도 원죄를 인정하면서, 사람이 믿기 전에 먼저 주어지는 은혜인 선행 은총을 함께 강조한다.
- 모든 사람의 부활로 넓혀 읽는 견해: 일부 해석자는 22절이 의인과 악인을 모두 포함한 부활(요한복음 5:28-29)을 말한다고 본다. 이 견해에서도 부활 뒤의 운명은 최후의 심판에서 갈린다고 이해한다.
- 보편구원론의 읽기: 결국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보편구원론의 근거로 이 구절을 드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주요 교단들은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23절이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로 범위를 한정한다는 점과 심판을 말하는 다른 본문을 반론으로 든다.
논쟁과 쟁점
가장 큰 쟁점은 22절의 두 "모든 사람"이 같은 범위인지에 관한 것이다. 문법상 두 표현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이 보편적 해석의 근거로 제시되고, 문맥상의 한정이 반론의 근거로 제시된다. 원죄가 어떻게 전해지는지를 두고도 신학 전통마다 설명이 다르지만, 이 구절이 인류 전체가 죽음 아래 있음을 말한다는 데에는 개신교 교단들이 대체로 같은 입장이다. 22절의 동사는 그리스어에서 수동형("살림을 받다")이어서, 부활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임을 강조한다고 보는 해설이 많다.
한국 교회에서
부활절 설교와 장례예배에서 자주 읽히는 본문이다. "부활의 첫 열매"라는 표현은 부활절 설교와 기도에서 흔히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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