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11-12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고린도전서 13:11-12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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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사랑장'에서 지금의 앎은 어린아이의 말이나 거울에 비친 흐릿한 모습처럼 부분적이며, 장차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온전히 알게 된다고 말한 대목이다. 종말의 소망을 말할 때와 은사가 언제까지 계속되는지를 다투는 논쟁에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인 고린도전서 13장의 끝부분이다. 13장은 흔히 '사랑장'이라 불린다. 12~14장은 방언과 예언 같은 은사(성령이 주시는 능력)를 두고 다투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대목이고, 13장은 사랑이 어떤 은사보다 앞선다고 말한다.
바로 앞 8~10절에서 바울은 예언·방언·지식이 "부분적"이어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그치지만, 사랑은 영원하다고 한다. 11~12절은 이 말을 두 비유로 설명한다. 첫째는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면 아이의 일을 버린다는 비유이다. 둘째는 지금의 앎이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흐릿하고 부분적이지만,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아시듯 온전히 알게 된다는 비유이다. 이어지는 13절은 믿음·소망·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이라는 결론으로 넘어간다.
해석
- 종말론적 읽기: 많은 주석가와 대부분의 교단은 "그 때"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를 그리스도의 재림 뒤에 하나님을 직접 뵙는 완성의 때로 본다. 이 읽기에서 이 구절은 종말론적 소망의 근거가 된다.
- 거울과 수수께끼: "희미하나"로 옮긴 그리스어 표현은 '수수께끼 속에서'라는 뜻에 가깝다. 하나님이 모세와는 "대면하여"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않겠다고 한 민수기 12:8을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거울은 금속을 닦아 만들어 상이 선명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흔히 덧붙는다.
- 천주교 전통의 읽기: 천주교는 이 구절을 지복직관(至福直觀, 하늘에서 하나님을 직접 뵙는 복)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본문 가운데 하나로 든다.
- 신학적 겸손의 읽기: 교단을 가리지 않고, 지금의 신학 지식도 부분적이라는 점에서 자기 이해를 절대화하지 않는 태도의 근거로 읽기도 한다.
논쟁과 쟁점
가장 큰 쟁점은 8~10절의 "온전한 것"이 무엇인가이다. 이 물음은 방언·예언 같은 은사가 언제 그치는가로 이어진다(은사 중지론과 지속론).
- 은사 중지론 일부의 읽기: 일부 은사 중지론자는 "온전한 것"을 완성된 신약 정경(교회가 성경으로 인정한 책들의 목록)이나 성숙한 교회로 본다. 이들은 11절의 '아이에서 어른으로'를 초대교회에서 성숙한 교회로 넘어가는 흐름으로 읽는다. 그러나 중지론자 가운데에도 12절의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는 재림 뒤를 가리킨다고 보고, 은사 중지의 근거를 다른 본문에서 찾는 이가 많다.
- 은사 지속론의 읽기: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 쪽은 "그 때"가 재림이므로 은사도 재림 때까지 계속된다고 본다. 이들은 고린도전서 1장 7절의 "나타나심을 기다림"도 함께 근거로 든다.
한국 교회에서
고린도전서 13장 전체가 결혼예배에서 자주 봉독되며, 이 대목도 그 안에 포함되어 읽힌다. 설교에서는 11절이 신앙의 성숙을 다룰 때, 12절이 하나님을 대면할 소망을 말할 때 인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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